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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은 옳은가?

단상 2015. 7. 13. 02:24

 

 

 수학과 논리학은 모두 근본에 있어서 모순율, 동일률, 배중률을 공리로 삼고 있다.[각주:1] 세 공리의 경우, 비판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옳다고 믿고 있다. 모든 학문,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대화와 논리는 세 공리를 기반으로 삼고 있고, 세 공리에 어긋나는 경우 '비합리적이다'라거나 '모순적이다'라거나 '비일관적이다'라거나 하는 발언을 한다. 그만큼 우리는 세 공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세 공리는 절대적으로 옳을까?

 

 공리란 우리가 '누구든지 옳다고 생각하는 문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이나 논리학 공리계에서는 공리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이들을 옳다고 간주하고 그로부터 여러 명제들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누구든지 옳다고 생각하는 문장'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과거의 모든 인류, 현재의 모든 인류, 미래의 모든 인류에게 논리학의 세 공리가 옳은가 아닌가를 조사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발언은 '인간의 직관(혹은 선험체계)'능력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직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은 것이 공리다.

 

 실질적으로 인간은 "고양이가 은행에 있으면서, 도서관에 있다(도서관과 은행이 다른 3차원 공간이라는 가정하에)"라는 문장이 결코 옳을 수 없음을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그 이유는 실질적으로 우리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고, 그러한 상황을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는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든 그렇게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배중률이 정당화되는가? 그런 논리는 귀납논리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a라는 까마귀는 검다

b라는 까마귀도 검다.

내가 만나본 모든 까마귀는 검다.

내가 만나본 모든 까마귀는 검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

---------------------------------------------------------

따라서 까마귀는 검다.

 

 

위의 논리와 배중률이 다를 게 뭔가. 물리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배중률이 옳다고 판단하고 살아가는 것이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왜냐면 실제로 우리가 물질세계에서 만났던, 만나는 모든 대상이 서로 다른 A라는 공간과 B라는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배중률을 우리가 사는 물질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가령 형이상학계에 배중률을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판단하는 세계가 아닌, 다른 추상적인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에는 우리의 논리가 통할 수 있을까? 이를 생각하게 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당장 현실을 초월한 추상적인 세계를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온다. 아주 간단하게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추상적인 대상에 대해 '있거나 없거나 둘중 하나다'라는 논리를 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형이상적인 신'을 생각해보면 된다.

 

1. '모든 대상에는 원인이 존재한다'

 

 이는 물질에 대해서 응당 기대하는 성질이다. 원인을 소급하여 빅뱅까지 간다면 어떨까? 빅뱅 이전은? 빅뱅 이전에 뭔가 있다면, 또 그 이전은? 대상에 원인이 있다면, 이를 무한히 소급할 수 있다. 무한히 소급이 된다면, 결국 '모든 대상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우리는 원인을 임의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다. 세상에 절대적인 시초를 보장해줄 존재가 없다면, 논리에 따라 세계는 시작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고, '처음'이라 부를 수 있는 원인도 없다. '모든 대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신의 존재가 보장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

 

2. 무(無)에서 유(有)나 나올 수는 없다

 

 이 역시 우리가 물질에 대해 응당 기대하는 성질이다. 모든 물질은 원인이 있고, 그 원인들이 결합하여 물질적인 대상이 새로 만들어진다. 절대적인 원인으로서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물질의 원인일 것인데, 신은 어떻게 물질을 만들었는가? 신이 물질이라면, 물질은 또 다른 원인을 가지기 때문에 신을 물질이라 할 수는 없다. 비물질인 신이 물질을 만들 수 있는가? 이는 무에서 유가 나온다는 논리로, 적어도 현실계의 논리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각되어야 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할 수 없다.

 

 

1과 2에 대해 모두 신뢰를 보낸다면, 이 얼마나 경의로운 결론인가. 신이 있을 수밖에 없으면서, 동시에 없을 수밖에 없다. 배중률에 대한 완벽한 반박이다. 이렇듯, 추상적인 세계를 다루는데 배중률을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같은 식으로 모순율이나 동일률도 똑같다.

 

 만약 나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참 어려운 결론이 나온다. 추상적인 세계를 살지 않는 우리는 물질계에서 얻어온 논리를 추상계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일관된다고 생각되는 방식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 내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추상계 역시 우리의 논리가 통용될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데, 이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위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알 수 없다. 만약, 추상계에 우리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런 대상들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야만 한다.

 

 추상계뿐만 아니다. 우리의 학문체계, 대화, 모든 논리가 옳다는 보장이 절대적으로 있을 수 있는가? 절대적으로 확신해 온 논리학의 공리들이 항상 옳지 않다면, 우리가 믿고 있던 것들이 틀릴 수 있다는 것에 신뢰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물질계의 대상들에 대해서 논리학의 공리를 사용하지만,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물리계에서 옳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가? 단순히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닌가?

 

  1. A이면서 동시에 not A일 수 없다. A는 not A가 아니라 A다. A 혹은 not A 둘 중에 하나만 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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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하여

단상 2015. 7. 13. 01:42

 

 

 사실 나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이런 말하면 좌파계열 인물들에게 신나게 탈탈 털리..), 생각을 하다보면 정치쪽이 계속 얽히게 된다. 구체적인 한국정치나 타국의 정치가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련하여 생각이 이어지게 된다.

 

 난 칸트가 역사철학이나 정치철학에 대해서 말했던 적잖은 이야기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칸트 언어로 '감성(체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원하는가가 타인과 충돌하게 되면, 이는 현대인이 대개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다원주의나,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의적인 방향으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다른 감성체계의 인간끼리는 '반드시' 충돌이 일어난다. 인종과 민족, 국가, 시대, 세대? 그런 것과 관련없이 갈등은 생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선하다'라는 특성보다는 홉스가 말했던 것처럼 '이기성'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다. 여튼, 감성들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때가 바로 정치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칸트를 읽으면서 인상을 크게 받았던 부분이지만,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하기를 원한다(따라서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안이한 '환상'은 애초에 버리는 것이 신상에 좋다). 칸트는 17-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당연하게도 이성(理性)에 두었다. 인류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논리, 자신이 원하는 것들과 관련된 것들을 발달시킬 것이고, 그러한 발달들이 일으키는 (선의의) 경쟁이 인간이성을 발달시키고, 역사를 진보시킬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말해주듯이, 인간이란 그렇게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다. 칸트의 답변은 그의 시대에 맞게 합리적이고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안타까운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인류가 자신의 감성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위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왔고, 사용해야 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윤리교육과 도덕성을 잘 교육받은 인간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선동'과 '분노' 심지어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논리를 타인이 수용하도록 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무엇이겠는가. 진보인사들이 좋아하는 소통이나 대화? 아니다. 최적의 방안은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한 '선동'이다. 인터넷 상에서 현실정치에 대해 "선동하지마라" 같은 이야기를 듣기 쉬운데, 사실 선동이야말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진보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이성'과 '합리성', '과학성', '전문성'을 가지고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한 채, 대화와 소통을 진행하다보면, 서로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합리성' 같이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를 누가 정의해 줄 것인가? 무엇이 이성적이고, 무엇이 합리적인가를 따질 수 있는가? 사실 모두 다 "내가 원하는 합리성"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일뿐이다. 또한 완전히 같은 인간이 아닌 이상, 대화를 계속 진행하다보면 근본적인 측면에서 달리하는 생각이 나오게 된다. 그것들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대화를 진행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그렇게 이상적인 존재는 아닐뿐더러, 근본의 차이는 결국 의견을 좁힐 수 없게 만든다. 극단의 사례일지는 모르겠으나, 진보인사와 보수인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의견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국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신론과 유신론자가 신에 관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의견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잘못된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 진보인사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의견차이를 줄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반대측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당연한 것임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대화를 통해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동을 통해서 해야 한다. 한명한명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것이 좋다는 것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런 방식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현대에는 미디어를 통해 선동이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권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지식권력이든간에.

 분노나 폭력은 어떨까? 나는 인간은 사랑이나 자비, 연민 같은 현대인들이 숭고하다고 믿는 대상이 분노나 폭력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의 인간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 인간은 사랑과 자비보다는 분노나 폭력에 더욱 이끌린다. SNS나 여러 수단을 통해, 수많은 인간들에게 반대쪽 정치파에 분노를 심어주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다. 자신의 정치를 위해서는, 숙청 등의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에 대해 거부성이 있으므로, 잘 사용해야 한다)ㅡ사실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법의 집행이나 공권력 동원은 국가적 단위의 폭력이다ㅡ.

 

 적잖은 사람들이 정치는 이상적이어야하며,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하는데, '이상'만 찾다가는 아무것도 못한 채 망하고 만다. 나는 정치는 이상보다는 현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인물로, 정도전을 찾아볼 수 있겠다. 정도전은 조선을 세운 '혁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그는 탁월한 선동가였다. 학문적으로는 불씨잡변 등의 책으로 불교, 도교를 모두 싸잡아 비판하였고ㅡ관련한 책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비판보다는 불교와 도교를 공격한다는 것 자체로 유교의 지위를 높이려는 '선동'이었다ㅡ, 자신과 척을 달리하는 적들을 자비없이 숙청할 수 있는 수완가였다. 나는 고려를 지키려했던 선비들을 매우 멍청한 인간들로 보고 있다. 역사나 도덕 교과서에서는, 나라를 끝까지 수호한 도덕적인 인물들로 묘사되지만, 사실상 그들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이상적인 인간상만을 고집했던 인간들이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유교사회를 건립하겠다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를 위해서 온갖 선동과 살인, 폭력,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나는 그가 우왕을 '신돈의 아들'로 포장하고 주변인들을 선동하여 왕위에서 내려버린 사건을 매우 인상깊게 보고 있다. 또한 정몽주 살인을 사주하고, 여말 인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에 감명을 받았다. 위화도 회군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 매우 과격하게 말하자면, 나는 정치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정도전처럼 쿠데타와 살인 등을 쉽게 수단으로 삼기는 어렵다.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어떻게든 힘으로 용인될 수 있었지만, 현대에는 그렇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정도전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위해서 타인과 자신의 다름과 의견을 다양성을 인정하고, 열린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의견차이를 좁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쯤 되면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올바르지 않은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가?'라는 상투적인 반박이 들어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부르지 않고, 정도전을 세조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하여,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고작 해봤자, 17-18세기에 등장한 사회계약설의 자연법이나 천부인권설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법이나 천부인권설이 절대적으로 옳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모두 철학자나 당대 사상가,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설정해둔 것뿐이다. 결국 위와 같은 질문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정당화하고 싶은 작은 소망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무엇이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의 판단은 모두 개인이 원하는대로 정하고 결정할 뿐이다.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더렵혀지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할 것인가'이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덧붙이지만, 나는 정치에서 도덕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사랑, 자비 등의 가치가 정치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런 논리를 사용하면 된다(진보인사가 주로 꺼내는 단어들이 '국민의 심판', '도덕성'이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소용이 있으면 쓰면 된다. 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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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일상 2015. 7. 13. 00:13

 

 

 글을 쓰려고 생각을 적어둔 노트를 찾으려고 했는데,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발표 때문에 적었기 때문에 일일이 노트북으로 옮기지 않았는데, 그 노트가.. 어쩐지 발표집도 사라졌는데,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 당시에 내가 뭘 생각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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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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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일상 2015. 7. 11. 02:47

 

 

 1. 학부 졸업 전까지 꼭 책 한 권을 내고 싶다. 출판해줄 곳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독교 신앙 카테고리에 써놓은 '기독교에 대한 단상'도 내용 추가하고 다듬고, 작년에 썼던 논문도 스며들게 하고.. 내가 다룰 수 있는 주제를 일관되게 적고 싶다. 머리로 구상만 하고 손도 못 대본 주제도 꽤 많으니, 대충 쑤셔넣으면 책 한권은 나오지 않을까싶다. 제대로 구상하고 쓰려면 얼마나 걸리련지는 알 수가 없다. 시간날 때 생각 좀 해두고, 세이브 좀 많이 해야 하나..

 

 

 

2. 예전에는 결혼이나 연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_=.. 사실 상대도 없으니 탁상공론이었지만.. 본인의 미래와 성격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런 것들은 상대에게 고통만 안겨줄 것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다. 교수가 된다면 좋겠지만, 절대 쉬운 일도 아니고.. 죽도록 노력은 하겠지만, 교수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니.. 거기에 본인의 암울한 사회성과 끝없는 인간불신을 생각해보면 답이 없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는 생각하고 있다. 집에 왔는데 밥 차려줄 사람도 없고, 같이 대화할 사람도 없는 건 조금 슬프지 않은가싶다. 뭐.. 어차피 이대로 살다가 죽을 게 뻔해서 이쪽으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3.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예수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을 그렇게 강조했다. '부활'은 성경을 풀어나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죽음을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인간에게 극상의 소망을 품게하는 종교적 장치다. 기독교는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대개 나와는 반대의 생각을 지닌 경우가 많다. '소망'도 그렇다.

 인생에 소망이 있어야 하는가하는 것은 내게 정말 큰 고민 중에 하나다. 나는 기본적으로 삶에 소망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소망을 품게 되면, 삶을 지속하기에 매우 좋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소망에는 부정적이다. 소망하는 내용 자체가 미래에 실현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바이나, 그것을 자신이 그저 원하는 쪽으로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잘 모르겠다.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에 대해 쓸데없이 기대했던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다 자기혐오로 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기독교처럼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면 어느 정도 중화는 되겠지만,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어떤가? 그것을 자신의 노력이라 여긴다면, 그 사고방식이 어디로 가겠는가. 타인에게 그대로 향해서,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할 뿐이다. 운이라 여긴다면? 그저 운일 뿐이다. 너무 극단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내가 '소망'이라는 키워드에 품고 있는 본심이다. 소망없는 삶이 좋은가하면 또 모르겠다. 내 삶을 보면 그렇게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소망은 인간의 삶의 동력소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꼭 종교처럼 추상적인 소망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대부분 작고 큰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어느 대학에 가서, 어디에 합격하고, 누구랑 결혼하고싶다 등 큰 소망부터해서, 내일 당장 누구와 잘 만나고 싶다 등까지. 이런 소망들은 소망의 내용을 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수반하게 한다.

 타인들의 삶을 생각하다보면, 나는 삶에 소망을 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머리를 맴돌게 된다. 사실 소망을 가지고 살아보면 가장 좋겠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기에 머리로만 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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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시어터 2집 수록곡입니다. 중간중간에 들리는 총알같은 기타소리가 인상적이네요(메탈리카 one 후반부가 떠올르네요). 5분 40초 즈음에 들리는 존명의 베이스솔로도 좋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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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일상 2015. 7. 5. 17:17

 

 

 기독교 신앙 카테고리에 '기독교 해제'라는 글을 썼습니다. 분량은 총 A4 24페이지입니다. 평소에 기독교에 쓰고 싶었던 생각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정말 많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사실 읽어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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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향상 저는 마이너 스케일(우울하거나 슬퍼지거나 하는 등의 감성적인 곡들)의 곡을 즐겨 듣습니다. 그러한 취향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번쯤 들어볼만한 곡들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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