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하여

단상 2015. 7. 13. 01:42

 

 

 사실 나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이런 말하면 좌파계열 인물들에게 신나게 탈탈 털리..), 생각을 하다보면 정치쪽이 계속 얽히게 된다. 구체적인 한국정치나 타국의 정치가 아니라, 좀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정치'란 무엇인가에 관련하여 생각이 이어지게 된다.

 

 난 칸트가 역사철학이나 정치철학에 대해서 말했던 적잖은 이야기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칸트 언어로 '감성(체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원하는가가 타인과 충돌하게 되면, 이는 현대인이 대개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다원주의나,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의적인 방향으로 결코 흘러가지 않는다. 다른 감성체계의 인간끼리는 '반드시' 충돌이 일어난다. 인종과 민족, 국가, 시대, 세대? 그런 것과 관련없이 갈등은 생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이란 '선하다'라는 특성보다는 홉스가 말했던 것처럼 '이기성'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다. 여튼, 감성들간의 충돌이 일어나는 때가 바로 정치가 탄생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칸트를 읽으면서 인상을 크게 받았던 부분이지만,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하기를 원한다(따라서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안이한 '환상'은 애초에 버리는 것이 신상에 좋다). 칸트는 17-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방안을 당연하게도 이성(理性)에 두었다. 인류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논리, 자신이 원하는 것들과 관련된 것들을 발달시킬 것이고, 그러한 발달들이 일으키는 (선의의) 경쟁이 인간이성을 발달시키고, 역사를 진보시킬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말해주듯이, 인간이란 그렇게 합리적인 동물은 아니다. 칸트의 답변은 그의 시대에 맞게 합리적이고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안타까운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인류가 자신의 감성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위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왔고, 사용해야 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윤리교육과 도덕성을 잘 교육받은 인간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선동'과 '분노' 심지어는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논리를 타인이 수용하도록 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무엇이겠는가. 진보인사들이 좋아하는 소통이나 대화? 아니다. 최적의 방안은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한 '선동'이다. 인터넷 상에서 현실정치에 대해 "선동하지마라" 같은 이야기를 듣기 쉬운데, 사실 선동이야말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진보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이성'과 '합리성', '과학성', '전문성'을 가지고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한 채, 대화와 소통을 진행하다보면, 서로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합리성' 같이 뭔가 있어 보이는 단어를 누가 정의해 줄 것인가? 무엇이 이성적이고, 무엇이 합리적인가를 따질 수 있는가? 사실 모두 다 "내가 원하는 합리성"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일뿐이다. 또한 완전히 같은 인간이 아닌 이상, 대화를 계속 진행하다보면 근본적인 측면에서 달리하는 생각이 나오게 된다. 그것들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대화를 진행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그렇게 이상적인 존재는 아닐뿐더러, 근본의 차이는 결국 의견을 좁힐 수 없게 만든다. 극단의 사례일지는 모르겠으나, 진보인사와 보수인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의견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아는 국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신론과 유신론자가 신에 관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의견차이를 줄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잘못된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 진보인사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의견차이를 줄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반대측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좋은 것임을, 당연한 것임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대화를 통해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동을 통해서 해야 한다. 한명한명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것이 좋다는 것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과거에는 그런 방식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현대에는 미디어를 통해 선동이 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권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지식권력이든간에.

 분노나 폭력은 어떨까? 나는 인간은 사랑이나 자비, 연민 같은 현대인들이 숭고하다고 믿는 대상이 분노나 폭력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의 인간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 인간은 사랑과 자비보다는 분노나 폭력에 더욱 이끌린다. SNS나 여러 수단을 통해, 수많은 인간들에게 반대쪽 정치파에 분노를 심어주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다. 자신의 정치를 위해서는, 숙청 등의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에 대해 거부성이 있으므로, 잘 사용해야 한다)ㅡ사실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법의 집행이나 공권력 동원은 국가적 단위의 폭력이다ㅡ.

 

 적잖은 사람들이 정치는 이상적이어야하며,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하는데, '이상'만 찾다가는 아무것도 못한 채 망하고 만다. 나는 정치는 이상보다는 현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한 인물로, 정도전을 찾아볼 수 있겠다. 정도전은 조선을 세운 '혁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그는 탁월한 선동가였다. 학문적으로는 불씨잡변 등의 책으로 불교, 도교를 모두 싸잡아 비판하였고ㅡ관련한 책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비판보다는 불교와 도교를 공격한다는 것 자체로 유교의 지위를 높이려는 '선동'이었다ㅡ, 자신과 척을 달리하는 적들을 자비없이 숙청할 수 있는 수완가였다. 나는 고려를 지키려했던 선비들을 매우 멍청한 인간들로 보고 있다. 역사나 도덕 교과서에서는, 나라를 끝까지 수호한 도덕적인 인물들로 묘사되지만, 사실상 그들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 '말'만하고 행동하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이상적인 인간상만을 고집했던 인간들이었다. 정도전은 자신의 이상(유교사회를 건립하겠다는)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를 위해서 온갖 선동과 살인, 폭력,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나는 그가 우왕을 '신돈의 아들'로 포장하고 주변인들을 선동하여 왕위에서 내려버린 사건을 매우 인상깊게 보고 있다. 또한 정몽주 살인을 사주하고, 여말 인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에 감명을 받았다. 위화도 회군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 매우 과격하게 말하자면, 나는 정치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정도전처럼 쿠데타와 살인 등을 쉽게 수단으로 삼기는 어렵다.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어떻게든 힘으로 용인될 수 있었지만, 현대에는 그렇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정도전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위해서 타인과 자신의 다름과 의견을 다양성을 인정하고, 열린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의견차이를 좁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쯤 되면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올바르지 않은 수단을 사용해도 되는가?'라는 상투적인 반박이 들어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부르지 않고, 정도전을 세조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하여,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고작 해봤자, 17-18세기에 등장한 사회계약설의 자연법이나 천부인권설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법이나 천부인권설이 절대적으로 옳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는 모두 철학자나 당대 사상가,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설정해둔 것뿐이다. 결국 위와 같은 질문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정당화하고 싶은 작은 소망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무엇이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의 판단은 모두 개인이 원하는대로 정하고 결정할 뿐이다.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더렵혀지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효율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할 것인가'이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덧붙이지만, 나는 정치에서 도덕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이나 사랑, 자비 등의 가치가 정치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런 논리를 사용하면 된다(진보인사가 주로 꺼내는 단어들이 '국민의 심판', '도덕성'이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소용이 있으면 쓰면 된다. 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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