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순수이성비판의 절정은 '선험적 통각'에 있었다.

 

감성과 오성을 통해 인식되는 모든 것들을 하나의 의식주체가 경험한다는 것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의 골자였다.

 

이에 따르면,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의 주체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문장에는 '나는 생각한다'가 있어야 한다.

 

칸트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생각한다'는 나의 모든 표상들에 반드시 수반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한다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전혀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안에서 표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가 모든 문장에 덧붙여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옳은 말이 된다.

 

칸트에게 있어 '사유한다' '생각한다'는 '인식한다'와 동치수준의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가 어떤 문장이든지 빠지게 되면 그것은 옳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선험적 종합판단에 대한 자기의식의 선험적 통일이 의미가 없어지니깐.

 

여튼, 철학 전공자의 저런 말은 그닥 새겨듣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나는 생각한다'를 논문, 논술답안지, 레포트 등이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글은 작성자 자신이 종합하고 판단하여 써내린 글이다. 근데 거기에 '나'라는 작성주체가 빠져있고, 자신의 사유라는 '생각한다'가 빠진다면 웃기지 않은가? 게다가 그걸 금지한다니.

 

내가 학자이고 연구에 의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그걸 논문으로 냈다.

 

근데 거기에 '내가 연구해서 이런 결론이 나왔다. 나는 ~이라고 생각한다.'를 쓸 수 없다고? 말이 되는 일인가?

 

이렇게 쓰지 말란 교육을 받아온 인간들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이기 위해 1인칭은 삭제되어야 한다."

 

...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수많은 학자들의 논문과 결론들, 연구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비판'당한다. 학자의 운명이다.

 

그렇게 비판당할 수 있다는 자체가 연구자 자신의 '생각'과 연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비판당할 수 있다면, 비판당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는 이미 '객관성'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를 쓸 수 없다라. 어이가 없는 소리다.

 

만약, 3인칭으로 글을 써내리고 그것이 객관성을 보증해주는 기능이 있다면 비판 자체가 불가능해야 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고 '나는 ~라고 생각한다'를 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더 사리에 맞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를 표기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글을 쓰는 필자들과 연구자들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스스로 연구하고 생각하여 낸 것들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주체도 없는 3인칭으로 서술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산물이지만 자신은 거기에 등장할 수 없다.

 

타인에게 그것이 제공되는 순간, 그 산물은 철저히 익명이 된다.

 

물론, 그 책이나 산물의 표지에는 '저자 xx'라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글의 내용에는 필자는 등장할 수 없다.

 

독자가 글을 읽는 순간부터, 그 글은 더 이상 필자의 산물이 될 수 없다.

 

독자는 필자가 없는 온갖 3인칭화된의 언어를 맛보게 된다.

 

 

글의 골자인 내용에는 작가 본인은 등장할 수 없도록 '강제'됨으로써 작가는 글에서 소외된다.

 

이 소외감은 심각하다.

 

스스로의 글에 자신이 등장할 수 없음으로써, 작가의 글은 작가 자신의 것이 아닌 동떨어진 하나의 사물이 되고 만다.

 

그것은 곧 글의 주인격인 작가의 사물화를 의미한다.

 

작가가 스스로를 글에서 나타낼 수 없는 것은 결국 작가의 소외와 사물화를 불러온다.

 

 

 

스스로 글에서 등장할 수 없는 필자는 자신의 글이지만 자신도 다른 누구의 글도 아닌 마냥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이, 기계가 글을 쓴 듯 글을 쓰게 된다.

 

이는 글쓰기 환경을 메마르게 하며, 수동적이고 정적인 글쓰기를 불러온다.

 

글에 필자가 나타낼 수 있는 역량과 역동성이 제한된다는 의미이다.

 

 

...

 

 

이런 문제들로 나는 글쓰기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또한 동시에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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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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