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considering incompleteness, we've to define some basic words.

 

1. definability.

 

 $k'th$ relation $R$ is definable in $\mathfrak{A}$ iff there exists some first order formula that defines it. In this case, the formula $\phi$ must have some free variables among $v_1, v_2, \cdots , v_k$. then the relation $R$ is constructed as $\{<a_1,a_2,\ldots , a_k>| \models \phi[a_1,a_2, \ldots , a_k]\}$.

($\phi[a_1,a_2,\ldots, a_k]$ means substituting free variables among $v_1, \ldots, v_k$ for $a_i$ where $a_i$ belongs to the universe of given structure).

for example, in the structure of reals, we can define $\{<a,b>\in \mathcal{R} \times \mathcal{R} | a\leq b \}$ by formulating $v_1 \leq v_2$ as $\exists v_3 v_2=v_1 + v_3 \cdot v_3$.


2. decidability.

 

 effective procedure means, without considering time/space, there exist some algorithms that any computer can follow, given finite instructions(and this computer can finally end algorithms).

 

 and a set $\Sigma$ of expressions is decidable iff there exists an effective procedure that, given any expression $\alpha$, will decide whether or not $\alpha\in\Sigma$.

 

3. axiomatiziability.

 

 a set of sentenes $T$ is a theory iff for any sentence $\sigma$, $T$ meets $T\models\sigma \rightarrow \sigma\in T$. roughly, theory is a set of sentences which is closed under implications. and consequences of $\Sigma$, $Cn\Sigma$ is defined as $\{\sigma | \Sigma \models\sigma\}$ where $\sigma$ is any sentence.

 Theory $T$ is axiomatizable iff there is a decidable set $\Sigma$ of sentences such that $T = Cn\Sigma$.

 

 

 

p.s. 설명하자면 definability는 집합기호 {x|x는 ~}에서 조건제시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것을 1차논리로써 표현가능하냐는 것이지요. decidability는 임의의 문장을 주었을 때 그 문장이 주어진 집합에 들어가냐 아니냐를 기계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지를 묻는 겁니다(즉, 컴퓨터가 할 수 있는 그런 알고리즘이 존재하는가의 문제). axiomatizability는 axiom의 뜻을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theory T의 문장들을 모두 implication할 수 있는 어떤 결정가능한 집합이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가령 ZFC집합론의 모든 문장들은 ZFC의 공리들로부터 닫혀있고, 임의의 문장을 주었을 때 그 문장이 공리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으므로 ZFC집합론은 axiomatizable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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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필수는 아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없을 것이라 판단하지만, 냉철해야만하는 철학도로서는 간단히 그렇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 문제가 물리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실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개인의 믿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존재가능성 자체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어느쪽이 이렇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우며, 현대 형이상학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이 문제는 이율배반의 문제로 예/아니요 모두로 대답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영적인 존재란 쉽게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그 존재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개개인마다 존재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딱 이것이다!라고 할 수가 없다. 이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 자체에 발화와 관련된 문맥, 사회인식 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ㅡ비트겐슈타인 후기이론을 생각하면 편하다ㅡ. 그러나 대략적인 이해는 가능할텐데, 나는 적어도 (절대자로서)신, 유령, 귀신, 강시, 영혼 등의 존재를 아우르는 어떠함이라고 보고 싶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관련된 발화상황, 문맥을 보아야 한다.

 첫째, 이들은 물리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물리적 존재라는 건, 현대 물리학이 인정하는 물리 구조를 지닌 존재라는 걸 나타낸다. 쉽게 말해 쿼크나 원자 등이 그들 존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독교의 신은 세계를 창조했지만, 그 스스로는 물리적 존재가 아닌 영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귀신이나 유령 등이 등장하는 설화에서, 그들은 신출귀몰하게 텔레포트를 쓰거나, 인간의 물리적 접촉이 통하지 않는 등 물리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물리적 존재가 아닌 동시에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유교사회의 조상신에 대한 묘사를 보면, "조상님께서 도우셨다"거나 제사를 지냈는데 밥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밥을 드시고 가셨다"든가하는 표현을 쓴다. 혹은 악령들이 의자를 부순다든가, 그네를 움직인다든가, 문을 쾅하고 닫는다든가하는 목격담도 있다. 이것이 그들의 두 번째 속성으로, 많은 이야기에 영적인 존재는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묘사된다.

 만약 위의 두 성질에 동의한다면, 즉각적인 모순성이 위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말해, 영적인 존재가 원자구조를 지닌 물리적 존재도 아니면서 물리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물리력이란 위에 언급한 것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시야에 포착된다든가, 사진에 찍힌다든가, 기계가 포착한다든가, 소리가 들린다든가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과연 어떤 존재가 물리적이지 않으면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다음을 염두해보자.

  만약 영적인 존재가 완전한 수준에서 물리적인 요소가 없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는 둘째 속성에 모순이 된다. 비물리적인 영적 존재가 물리적 대상인 인간, 사물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질과 영 사이에 영향관계를 만드는 메커니즘이 존재해야 한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물리적 존재와 영적 존재는 서로 평행하기만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는 논리적 요소로서, '물리적 성질이 전혀 없는 것이 아무 인과 없이 물리적 영향력을 끼친다'는 문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물리적 영향력을 받았다는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물리력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영적인 존재가 가능하게 했다면, 영적인 존재가 물리력을 행사하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ㅡ여기에는 無가 有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ㅡ. 그렇다면 그 요소, 메커니즘이란 어떤 성질을 지녀야만 하는가.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의 폐기를 불렀던 논리구조다.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그 메커니즘은 아무 연관이 없는 영과 물질 사이를 이어주기 위해 영적인 것도 아니고 물질적인 것도 아닌 제3의 성질을 지녀야만한다. 만약 영적인 것이라면, 물질성을 지니지 않게 된다.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메커니즘이 서로 전혀 다른 영과 물질을 어떻게 연결지어줄 수 있을까? 반대의 경우도 같다. 따라서 최초의 메커니즘은 영적이지도 물리적이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나 영적이지도 물질적이지도 않은 존재란 무엇인가? 정의상 물질과 비물질은 서로 모순상태이기 때문에, 둘 중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결국 배중률(A이거나 ~A 둘 중 하나다)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영적인 존재가 완전히 물리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존재는 물리성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둘째 속성에 모순이다. 물리성을 지닌 존재가 갑자기 원자단위로 붕괴해서 벽을 통과하여 의지를 가지고 다시 형태를 재구성한다든가, 자신은 물리적 영향력을 주는데, 스스로는 물리적 영향력을 받지 않는다든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ㅡ물질들은 서로 영향을 받는다는 대전제ㅡ.

 이와 같은 연유로 나는 영적 존재가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동시에 영적 존재가 실제로 위의 두 가지 속성을 만족한다면, 그런 존재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따라서 영적 존재는 없거나, 인간이나 물질에 포착되지 않는 존재로 우리와는 무관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보고 들었다는 귀신 목격담, 종교적 신의 체험 등은 무엇인가. 이는 인터넷만 검색해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의 청력에 포착되지 않는 초저주파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초저주파는 지진 등의 자연재해 등이 만들어내는 음역대로, 동물들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도망간다든가하는 것도 초저주파의 영향이 있다고 한다. 초저주파는 진화의 영향탓인지 인간이 (재해에 앞서) 불안감을 가지게 하는데, 초저주파를 듣게하여 구토, 환각증세를 일으키게 했다는 실험도 있다.

 비슷한 논리로 나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ㅡ본인은 물리주의자에 가깝다ㅡ. 지금까지 제기된 영혼의 존재가능성이 철학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물질성이 부정된 영혼은 결국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고, 다른 가능성에서는 신을 비롯한 영적인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 철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제1원인론이다. "세상의 근원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기본적인 대답이다. 즉,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에 선행하는 무엇(원인)이 있어야하고, 그것을 연쇄하다보면 최초의 무엇이 있어야만 한다는 논리다. 만약 최초의 원인이 없다면, 이는 우리의 기본적인 논리인 "원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명제가 부정되게 된다. 따라서 이 논리에서는 최초의 원인이 있고, 원인을 위로 소급하지 않기 위하여 그 존재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원인인 존재가 된다(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 기독교의 하나님 등). 물질은 자가원인이 되지 않고 반드시 외부로부터 에너지 교환이 있어야 하므로 이 존재는 비물질적인 존재여만하고, 이를 영적 존재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다. 비물질적인 존재가 어떻게 물질인 우주를 생성해냈는가.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며, 제1원인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그 외에도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무엇이 아쉬워서 세계를 만들었는가? 그가 뭔가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어떤 결핍을 느낀다는 것이고, 이는 그의 완전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공격도 가능하다).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영적존재가 물질에 영향을 준다"는 논리에 빠지게 되어 폐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끝이 아닌데, 제1원인이 없다면 우주의 원인은 그저 원인들의 연쇄만 남게 되어 기본적인 관념인 "시작/원인이 있다"가 부정된다. 원인의 무한소급, 연쇄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신/영이 있거나 없거나하는 것은 명철한 논리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의 논리들을 배제할 수는 없기에, 그들이 있다면 결코 우리가 상상하거나 판단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종합하자면 적어도 우리의 관념에 있는 존재들을 영적인 존재, 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모순적인 것들이 많다. 가능한 것이라면, 초기 하이데거나 가다머의 '존재'에 대한 담론 정도가 아닐까싶다ㅡ하이데거는 존재를 '~것이라고 부를 수 없음'이라고 하였다ㅡ.


 지금까지의 논의로 보면, 내 논지는 종교를 부정하는 것 같아 보인다. 본인은 종교가 없지만 꼭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든가, 거짓말쟁이들이 만든 것이라든가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본인이 아직 인식과 존재에 대한 결론을 짓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식과 존재에 대한 구분을 완전히 내리지 못한 관계로ㅡ인간은 없는 것을 인식하기도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인식하기도 함ㅡ, 나는 논리적 불가능성이 현실에 존재할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 강제성으로는 논리학>수학>물리학 순서가 될 텐데, 논리학이 전제하는 것들이 과연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가령 A와 not A가 동시에 가능하지 않다는 대전제는 현실에서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러한 판단이 모든 경우에 옳다는 근거를 마련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ㅡ형이상학적 가능성에서도, 물자체에 대해 물질계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무의미하다ㅡ. 여튼, 이런 가능성 때문에 종교에서 설파하는 존재들의 현실성을 반드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외에도 종교가 주는 안도감이나 여러 효과들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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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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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하고 헬스다니면서 푹 쉬느라 벌써 2달 가까이 지났네요ㅋㅋ 좀 공부 감좀 잡고 다음주부터 괴델정리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ㅎㅎ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함축하는 바도 많고 오해도 많은 정리입니다. 괴델정리는 간단하게는 '페아노 공리계를 받아들이는 논리체계에는 참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문장이 존재한다'와 '페아노 공리계를 받아들이는 공리계는 공리계 내부에서 완전성을 스스로 증명할 수 없다'로 일축할 수 있습니다. '증명가능하다'는 개념은 지금까지 살펴봤던 일차논리에서 등장하는 증명의 개념과 같으며(증명론, $\vdash$가 등장), '참이다'는 것은 일차논리의 의미론($\vDash$가 등장)의 개념입니다.

 괴델의 정리는 당시 힐버트가 주창한 형식주의(formalism, 모든 수학은 유한한 길이의 식으로 반드시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을 것이다)를 박살내다시피한 정리입니다.

괴델의 정리가 오용되는 사례 중에 하나가 괴델정리를 자연수체계가 아닌 다른 체계로 옮기는 것입니다. 가령 '물리학은 자연수체계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물리학의 명제에는 참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든가 '성경 내에서 신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 자체에서 완전성을 스스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든가 하는 식입니다. 물리학이 수학적 성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맞지만, 저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물리학의 공리로부터 도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리학에 수학만큼의 완전한 공리들이 존재하는지는 저로서는 모르겠고, 이를 시도한 사람도 없어서 뭐라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수학의 범주를 완전히 넘어서서 사회현상이나 인간에 대해서 괴델정리를 적용하는 것은 이상한 적용입니다. '공리'라는 건 대개 수학에서만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리로서 제시되지 않은(혹은 불가능한) 귀납적인 체계들에 대해서 불완전성을 대입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괴델정리는 영향력이 큰 만큼 정의해야 할 것도 많고 증명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 따라오시면 마지막에는 논리력과 뿌듯함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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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했습니다

일상 2015. 4. 20. 16:56

 

 어찌어찌하다가 중도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방학 때나 괴델정리를 건드리려고 했는데, 휴학한 김에 6월 전에는 불완전성 정리를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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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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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A& LA

일상 2015. 3. 17. 14:42

http://blog.naver.com/flavius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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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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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논리학 포스팅에 괴델정리가 올라와야 할 타이밍이지만,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연재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힘 안드는 실수계 구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수학하는데 영어를 지향하고 한글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의라서 왠만한 포스트들은 모두 영어로 제시될 겁니다. 하지만 수학용어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사용되는 단어가 평범한 것들이니 겁먹지 않으시고 그저 읽으시면 되실 듯 합니다.

 

 ※ 공리적 집합론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아에 모르셔도 별 상관은 없고, 고등학교 수준의 집합과 명제만 이해하셔도 무관합니다.

 

 

In high school days, we understood natural numbers informally like 1, 2, 3 ... but if natural numbers are 'mathematical objects', we have to give formal defintion as far as possible. then what is the 'natural numbers' on earth?? from now on, using set theoretical ideas, we'll define natural numbers, and then integers, rationas, finally reals(and possibly complex numbers if I have some spare time). now give formal definition.

 

for some reasons, we'll define natural numbers starting 0 not 1. natural numbers are sets expressed as below.

 

(i) $\emptyset$ is a natural number.

(ii)$S(x)= x\cup \{x\}$ is a natural number where $x$ is any natural number.

 

for our convenience, we denote each set as some symbols. $\emptyset$ denotes '0'. $S(0)=S(\emptyset)=\{\emptyset\}$ denote '1', and $S(1)=S(\{\emptyset\})=\{\emptyset , \{\emptyset\}\}$ denote '2'. by the number of $S$ operation applied, we give natural numbers 0, 1, 2, 3, ..., and so on. by above definition, we can express every natural numbers using $0$ and $S$ like $S((\cdots S((S(0)))\cdots )$. intuitively, $S$ is a successor function such that $S(n)= n+1$.

 

 

 now give basic binary operations $+$ and $\cdot$.

 

*Addition of natural numbers

definition

1. $n+0=n$ 2. $m+S(n)=S(m+n)$ for all $m,n\in\mathbb{N}=\{n | n \text{ is a natural number}\}$

 

*Multiplication of natural numbers

definition

1. $n\cdot 0=0$ 2. $m\cdot S(n)=m+(m\cdot n)$ $m,n\in\mathbb{N}=\{n | n \text{ is a natural number}\}$.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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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술어논리의 여러 정리에 의해서 실수계 R을 포함하는 초실수계 *R을 구성할 수 있다. 재밌게도 초실수계에서 참인 1차술어논리의 모든 문장은 실수계에서도 참이고, 역 또한 성립한다. 쉽게 말하면 비표준 해석학으로 R에 관한 정리를 내놓으면 표준적인 해석학에서도 참이라는 것이다.
대학 1학년의 이공계생이라면 미적분학 첫수업에 엡실론-델타 방식으로 연속성을 정의하는 걸 보게 된다. 이는 해석학 초기의 라이프니치 등의 무한소라는 개념이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비표준적 해석학의 등장 이후, 초실수계는 무한소를 수로서 포함하기 때문에 종전의 표기를 사용해도 무리가 없게 되었다(입실론 델타 정의와 초실수계의 무한소를 이용한 연속성 정의는 서로 동치).

한국에서 비표준 해석학을 배울 기회는 없으니 각자 공부해야한다. 외국의 주 교재들은 구글에 nonstandard-analysis-book-recommendation 라고 치면 맨 위에 나오는 mathflow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다.


초실수계는 1차술어논리하면서 subsection으로 소개된 걸로 접했는데, 흥미로운 분야다. 시간이 나면 비표준 해석학도 공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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