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 다음학기

일상 2014. 2. 1. 22:48

 

 

 

하... 다음학기 시간표를 드디어 완성했다.

 

시간표 짜놓고 보니까, 정말 시간표가 철학과스럽다...

 

원래는 정치외교 전공이랑 수학과 집합론 들을려고 했는데 타과생 제한과목에다가 집합론은 해석학과 시간이 겹쳐서;; 그냥 이번학기는 전공진입이니까 그냥 모든 전공 교양 상관없이 다 전공관련한 걸로 채워버렸다.

 

 

4전공 3교양 21학점ㅋㅋㅋㅋ 21학점이 상당히 빡세기 때문에 누가 이렇게 하겠냐만... 솔직히 나는 더 듣지 못하는게 너무 아쉽다ㅠㅠ 힘들긴 하겠지만 알아야하고 알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철학과 교수님들 쿠클루나 고파스에서 평이 좋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ㅎㅎ

 

사실 저번학기에 한국 논리학계 대가이신 정인교 교수님의 수리철학을 수강했었는데, 엄청 히..힘들었다. 논리학을 아에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기 때문에 공부할 때마다 레알 멘붕... 그래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구글링돌리고 논문돌리고 블로그 돌아가면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정말 머리돌리고 많은 걸 알게 되어서 너무 좋은 수업이었다.

 

그래서 이번학기에도 정인교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련다. 학부에서는 매학기 한과목씩을 가르치시는데, 졸업전까지 다 들어볼 생각이다. 아 물론 대학원에서도ㅋㅋ 근데 교재가 영어원서고 게다가 번역본도 아에 없는 책들이라ㅠㅠㅠ 뭐... 열심히 공부해야지...

 

이번학기 정인교 교수님 교재는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낸 An Introduction to probability and inductive logic by Ian Hacking이다. 강의계획서를 봐서는 확률과 통계와 관련한 논리와 귀납~연역논리를 배울 것 같다.

 

아.. 내가 집에 안내려오고 학교에 있었다면 도서관에서 빌리고 미리 읽을 수 있을 텐데ㅠㅠ

 

 

 

여튼... 이번학기는 작년 1년보다 더 빡세고 힘들고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정확히 지향하는 바이고(ㅠㅠㅠ), 매학기 그랬던 것처럼 많은 걸 얻어갈 것같다.

 

 

...는 수강신청 자리가 나야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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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4. 2. 1. 08:08

날새고 이제 잔다.


피곤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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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논리학적 지식이 있으면 읽기 편하겠지만, 없어도 쉽게 해석해드릴테니 논리기호에 무서워 않아도 됩니다. 

 

※ 심각한 길이의 장문입니다

 

※ 논리학적으로는 양상논리 S5 공리체계(Modal logic S5-axiomatic system)를 사용하는 증명방법입니다

 

 

위의 논리식이 괴델의 존재론적 신증명입니다.

 

용어 설명을 잠시 해야겠군요(관련된 논제나 증명이나 단어 자체가 영어원어로 쓰는 게 더 편하고 의미가 명료합니다. 때문에 영어를 많이 쓸 것이므로 영어쓴다고 재수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Ax. : Axiom(공리)ㅡ어떤 계(system)안에서 증명없이 옳다고 받아들이기로 한 기본명제

Th. : Theorem(정리)ㅡ공리와 정의로부터 따라나오는 명제

Df. : Definition(정의)ㅡ기호(notation)에 대한 약속

 

P : Positive property (property of being positive)

□ : it is necessarily true that ~

◇ : it is possibly true that~

∀ : for all 

∃ : exist

¬ : not

ψ : psi(싸이),  φ : phi(파이) → 여기서는 모두 특정 개념을 이름

 

 

Axiom 1 : {P(φ)∀x[φ(x)→ψ(x)]}→P(ψ)

 

 

 제1공리 : φ가 positive property이고, 필연적으로 모든 x에 대해서 φ에 속하는 x가 ψ의 x로 환원될 수 있다면, ψ역시 positive property이다.

 

제1공리는 phi(φ)-psi(ψ) P-heredity입니다. 파이의 성질이 모두 싸이로 전환될 수 있다면, 싸이 역시 positive property를 가진다는 의미죠.

 

 

Axiom 2 : P(¬φ)↔¬P(φ)

 

제2공리 :  ¬φ의 성질이 positive라면, φ가 not positive이다. φ가 positive라는 것에 대한 부정은, ¬φ가 positive라는 것이다.

 

제2공리는 positive 성질에 대한 배중률을 인정하는 공리입니다.

 

¬φ가 positive이면 φ는 not positive이고, φ가 positive이면 ¬φ가 not positive이고, ¬φ와 φ가 동시에 같은 성질을 만족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Theorem 1 : P(φ)→◇∃x(x)]

 

제1정리 : property φ가 positive라면, φ 를 만족하는 x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증명) P(φ)를 가정하고, φ를 만족하는 대상이 하나도 없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φ(x)을 집합으로 친다면 φ집합은 Ø입니다. 더 편한 기호로 {}라 쓸게요.

 

논리학(logicism)과 순수수학(pure mathematics)에서 주로 사용하는 공리가 vacuous truth입니다.

 

전제가 틀리면 결론은 참으로 간주한다는 공리입니다. 혹은 전제에 속하는 성질이나 대상이 하나도 없다면(즉, 공집합이라면) 결론은 참이다라고 간주하는 공리죠.

 

이 vacuous truth 공리에 따르자면, 먼저 했던 가정에 의해서  φ(x)집합은 공집합(empty set)입니다. 그렇다면, φ집합에 속하는 원소가 하나도 없는 것이고, 이 전제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던지 그 결론은 참이 된다는 것이죠.

 

자, 그럼 φ 집합이 공허하기 때문에 φ¬φ는 논리학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따라서, 제1공리를 사용하면{P(φ)∀x[φ(x)¬φ(x)]}→P(¬φ)를 이끌어 낼 수 있지요.

 

이 말은, P(φ) ∧ P(¬φ)를 의미합니다. 즉, φ is positive and ¬φ is positive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죠.

 

이는 P에 관한 배중률을 인정하는 제2공리에 의해서 모순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했던 첫째 전제인 φ를 만족하는 대상이 하나도 없다는 전제는 모순이 생기므로 폐기합니다.

 

따라서, φ를 만족하는 대상이 존재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논리기호로  P(φ)→◇∃x(x)]라고 표기합니다.

 

 

Definition 1 : G(x) ⟺ ∀φ[P(φ)→φ(x)]

 

 

제1정의 : 모든 φ에 대해서, φ가 positive property라면 φ를 만족하는 x를 대상으로 삼는 개념을 G(x)라 한다.

 

G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입니다. 논리기호로는 G라고 썼지만 영어해설을 보니 Godlike라고 하더군요. 일단 제1정리에 의해서 P(φ)→φ(x)는 타당성을 가집니다. P(φ)→◇∃x(x)]가 증명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G에 대한 정의는 별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정의에 따르면, G라는 개념은 모든 positive property를 만족하는 x를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Godlike라고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글을 읽으실 때 G를 Godlike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하네요.

 

 

Axiom 3 : P(G)

 

 

 제3공리 : G is positive

 

G라는 개념은 양(+)의 성질을 가진다.

 

 

Theorem 2 :  ◇∃xG(x)

 

 

제2정리 : Godlike라는 개념을 만족하는 x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증명)

 

제1정리와 같은 방식의 증명법입니다.

 

제3공리에 의해서 G를 만족하는 x도 positive를 가지지만, G 자체도 positive를 가집니다. P(G)의 공리를 제1정리에 대입하면 P(G)→◇∃x[G(x)]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따라서, 제2정리는 제3공리와 제1정리로부터 추론할 수 있습니다.

 

 

 

Definition 2 : φ ess x  ⟺  φ(x) ∧ ∀ψ{ψ(x) → □ ∀x[φ(x)→ψ(x)]}

 

 

 제2정의 : x의 property φ를 가정하고,  모든 ψ에 대해서 (모든 성질인) ψ를 성질로 가지는 대상 x를 가정했을 때, 필연적으로 모든 x에 대해서 property φ가 x의 속성 ψ를 추동해낼 때 'φ ess x'라고 정의한다.

 

논리구조와 원어를 보니까 ess는 essence를 의미하는듯하네요. φ ess x는 'φ가 x의 본질적인 속성(essential property)'라는 걸 뜻합니다.

 

논리식을 보니 x의 속성 φ가 x의 모든 속성들 ψ를 이끌어 낼 때 φ를 essence라고 부르자고 정의한다는 겁니다.

 

 

 

Axiom 4 : P(φ) → □ P(φ)

 

제4공리 : φ가 positive property라는 건 필연적으로 φ가 being positive라는 것이다.

 

 

존재의 가능성은 철학적으로 3분류로 나뉩니다. '우연' '개연' '필연'으로요.

 

따라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우연적으로 존재하거나, 개연적으로 존재하거나,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제4공리는 positive property에 대한 존재성을 '필연적'으로 인정하자고 약속하자는 겁니다.

 

 

 

Theorem 3 : G(x)  →  G ess x

 

제3정리 : G(x)ㅡx가 Godlike라는 속성을 만족한다/x의 속성이 Godlike이다ㅡ를 가정한다면, G는 x의 본질이다.

 

 

(증명)

 

이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ess의 정의를 이용해야 합니다.

 

Definition 2 : φ ess x  ⟺  φ(x) ∧ ∀ψ{ψ(x) → □ ∀x[φ(x)→ψ(x)]} 의 논리틀을 이용해서 G  ess x를 증명하면 됩니다.

 

제2정의에 의하면, x의 특정 성질이 x의 본질(essence)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속성을 전제해야 합니다. 정의의 기호들을 이용하면, 본질속성인 φ와 임의의 속성 ψ을 전제해야 합니다. 둘을 전제하고, φ가 다른 모든 속성ψ을 이끌어낸다는 걸 증명하면 됩니다.

 

 

정리의 전제에 따라 x의 속성 중에 G는 가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x의 임의의 속성을 ψ라고 전제합시다.

 

이는 논리식으로 Gx  ∧ ψ(x)입니다.

 

이에 대해서 P(ψ)인지 P(ψ)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P(ψ)를 가정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Gx ∧ ψ(x) ∧ ¬P(ψ)를 전제부에 놓게 됩니다.

 

이는 제1정의와 제2공리에 의해서 모순을 낳습니다.

 

제2공리에 의해서 ¬P(ψ)는 P(¬ψ)와 동치의 값을 같게 됩니다.

 

제1정의는 G(x) ⟺ ∀ψ[P(ψ)→ψ(x)]이었고, 우리가 얻은 P(¬ψ)를 제1정의에 대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G(x) ⟺ ∀¬ψ[P(¬ψ)→¬ψ(x)]라는 식이 도출됩니다.

 

이는 ¬ψ(x) 즉, ¬ψ가 x의 속성이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이는 최초에 우리가 전제한 ψ(x)과 ¬ψ(x)를 동시에 인정한다는 것이고,

 

논리식으로  ψ(x) ∧ ¬ψ(x)이라는 말입니다. 완벽한 모순이죠.

 

 

이는 배중률에 어긋나는 것으로, 최초에 전제한 Gx  ∧ ψ(x)에서 G ∧ ψ(x) ∧ ¬P(ψ)을 만들었을 때 모순이 생긴다는 의미로, 마지막 전제인 ¬P(ψ)가 틀렸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Gx  ∧  ψ(x)를 가정했을 때, 우리는 P(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제4공리를 적용한다면  P(ψ) → □ P(ψ)이고, 속성 ψ는 필연적으로 positive하게 됩니다.

 

이쯤에서 다시 제2정의를 봅시다.

 

φ ess x  ⟺  φ(x) ∧ ∀ψ{ψ(x) → □ ∀x[φ(x)→ψ(x)]}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건 G  ess x 이므로, 위의 정의에 φ대신 G를 넣읍시다.

 

G  ess x  ⟺  G(x) ∧ ∀ψ{ψ(x) → □ ∀x[G(x)→ψ(x)]} 이런 식이 되죠?

 

 

이제 필요한 게 제1정의입니다. 제1정의는 G라는 속성은 모든 positive property를 가지고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어떤 positive property도 G에 속하게 됩니다.

 

이를 논리기호로 나타내면 [P(ψ) → ∀x [G(x) → ψ(x)]] 입니다.

 

ψ가 positive함을 가정했을 때, G로부터 연역적으로 positive한 ψ(x)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G가 모든 positive proprerty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G에 속하는 어느 positive property ψ는 G로부터 필연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식은 제1정의로부터 연역적으로 추론된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정리(theorem)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상논리학(modal logic)에서는 정리(theorem)에 대해서 pppppprule of necessitation이라는 법칙을 적용합니다.

 

├ p → ├ □ p 라는 논리식인데요, p가 theorem이라면 p는 필연적으로 theorem이라는 말입니다.

 

정리는 공리들과 정의들로부터 연역적으로 이끌어내졌기 때문에 필연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rule of necessitation을 방금 이끌어낸 정리에 적용하면 [P(ψ) → ∀x [G(x) → ψ(x)]]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axiom of distribution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axiom of distribution이란

 

□ (φ → ψ) → (φ→ ψ)를 의미합니다. φ → ψ의 과정이 필연적이라면, 필연적으로 φ라면 필연적으로 ψ가 된다는 것이죠.

 

 여튼 이 공리를 사용하면 P(ψ) → ∀x [G(x) → ψ(x)]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Gx 와 ψ(x)를 가정했을 때 P(ψ)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Gx  ∧  ψ(x)라는 전제 안에서  P(ψ)는 보증되기 때문에 방금 이끌어 낸 정리와 합쳐서 전제 속에서 ∀x [G(x) → ψ(x)] 또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보증됩니다.

 

 

G를 만족하는 x에 대해서, x의 임의의 속성(모든 속성) ψ는 positive임이 밝혀졌기 때문에

 

G(x)를 전제했을 때  □ P(ψ) → ∀x [G(x) → ψ(x)]의 식에서 P(ψ)대신 ψ(x)를 삽입해도 됩니다.

 

논리식으로는 ψ(x) → ∀x [G(x) → ψ(x)]}이고, 이를 x의 임의의 속성에 대해서 일반화하면

 

 ∀ψ{ψ(x) → □ ∀x[G(x) → ψ(x)]}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증명해야 했던 

 

G(x) → G  ess x  ⟺ G(x) → ( G(x) ∧ ∀ψ{ψ(x) → □ ∀x[G(x) → ψ(x)]})와 일치합니다.

 

따라서 제3정리는 증명되었습니다.

 

 

 

Definition 3 :  E(x)  ⟺ ∀φ [φ  ess x  → □ ∃x φ (x)]

 

제3정의 : 임의의 φ 에 대해서 φ가 x의 본질이면 필연적으로 φ 를 만족하는 x가 존재할 때, E(x)라고 정의하자.

 

'특정 대상의 본질이 존재할 때, 본질을 만족하는 x가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E(x)라고 표기하자는 겁니다.

 

영어본에서는 E를 NE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제3정의는 영어로 "Necessarily  Existing"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Axiom 5 : P(E)

 

 

제5공리 : E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positive property이다.

 

 

Theorem 4 : □ ∃x G(x)

 

제4정리 : 필연적으로 G를 만족하는 x는 존재한다.

 

 

괴델의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의 마지막 정리입니다.

 

 'Godlike라는 개념을 만족하는 대상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의미죠.

 

 

(증명)

 

일단 제1정의를 만족하는 대상 x가 있다고 칩니다. 즉, G(x)를 전제하자는 것이죠.

 

G(x)를 전제하면 G(x)의 정의에 의해서 모든 positive property는 G에 속하게 됩니다.

 

또한 제5공리에 의해서 P(E) 즉, being E is positive를 얻습니다. 제1정의와 제5공리에 의해서 우리는

 

E가 positive property를 만족하기 때문에 E또한 G의 한 성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G라는 속성을 만족하는 대상 x는 필연적으로 E라는 속성 또한 만족한다는 것이죠.

 

즉, Gx를 전제할 경우 E(x)  ⟺ ∀φ [φ  ess x  → □ ∃x φ (x)] 또한 성립하게 됩니다.

 

다시 제3정리에 의해서 G(x)  →  G  ess x  입니다. 즉, Ex에서 x가 만족하는 본질(φ)은 G입니다.

 

따라서  G  ess x  → □ ∃x G(x) 이고, G(x)  →  G  ess x 이기 때문에 G(x) → □ ∃x G(x) 입니다.

 

 그리고 의미적으로 G(x) → □ ∃x G(x)와 ∃xG(x) → □ ∃x G(x)는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에

 

G(x) → □ ∃x G(x) 대신에 ∃xG(x) → □ ∃x G(x)를 써도 상관없을 듯합니다.

 

G(x)는 'x가 G를 만족함' 혹은 'x의 속성은 G이다'를 의미하는데 ∃x G(x)는 'G를 만족하는 x가 존재한다'로, G(x)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기호로 ∃x G(x)  →  G(x)라고 쓸 수 있습니다.

 

결국, ∃xG(x) → □ ∃x G(x)를 써도 상관없다는 말이지요.

 

 

∃xG(x) → □ ∃x G(x)라는 사실은 공리와 정의로부터만 이끌어냈기 때문에 또 다른 theorem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theorem 3를 증명할 때 쓰였던 rule of necessitation을 적용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rule of necessitation에 의해서□ [∃xG(x) → □ ∃x G(x)] 입니다.

 

여기에  □ (φ → ψ) → ( ◇φ → ◇ψ)라는 정리를 적용합니다(modal logic s5 system theorem).

 

그렇다면, ◇∃xG(x) → ◇□ ∃x G(x) 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S5 system of modal logic의  ◇ □ φ → □ φ 라는 정리를 이용합니다.

 

이를 이용하면 ◇□ ∃x G(x) □ ∃x G(x) 를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결과들을 정리하면,

 

◇∃xG(x) → ◇□ ∃x G(x)

 

□ ∃x G(x) □ ∃x G(x) 입니다.

 

삼단논법에 의해서

 

◇∃xG(x) → □ ∃x G(x) 이고, 제2정리에 의해서 ∃xG(x)이므로 결국

 

modus ponens(p→q이고 p가 참이라면 q도 참이다)에 의해서 □ ∃x G(x)입니다.

 

 

 

괴델의 존재론적 신존재증명(Gödel's ontological proof of god)의 논리기호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저 공리체계로부터 나오는 몇가지 성질들이 있기 때문에 좀더 저 체계와 관련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x(Gx∧¬∃y(Gy∧x≠y)) = Godlike(=G)를 만족하는 대상은 유일하다

 

 

(증명)

 

G의 정의에 따라 G는 '모든 positive한 성질을 모두 만족하는 개념'입니다. 이를 만족하는 서로 다른 대상 x, y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x와 관련하여 {x}란 집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합의 정의에 의해서 x ∈{x}입니다.

 

 

 

여기에 ¬P({x})를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전제할 경우 axiom 2에 의해서 P(¬{x})를 얻게 됩니다. Gx의 정의에 의해서 positive성질을 지닌 ¬{x}는 G에 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x는 모든 positive property를 지니는 G라는 성질을 만족하기 때문에 P를 나열했을 때, P1 P2 P3 P4 … Pn …에 나타나는 임의의 k에 대해서 Pk(x)가 성립합니다. 따라서 ¬{x} 또한 저 배열 중에 있을 것이고, ¬{x}(x)가 성립합니다.

 

¬{x}(x)는 x가 {x}라는 개념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합론적으로 x ∉{x}로 표기되고, 집합의 정의에 의해서 x ∈{x}와 x ∉{x}는 모순이기 때문에 우리가 전제한 ¬P({x})는 틀리게 됩니다. 즉 , P({x})입니다.

 

앞에서 G에 속하는 x와 다른 대상으로 y를 가정했었습니다. 그렇다면, G의 정의에 의해서 y는 모든 positive한 성질을 만족하게 됩니다. 따라서 {x}(y)라고 쓸 수 있습니다. 집합의 정의에 의해서 y∈{x}입니다. 집합의 정의상 {x}를 만족하는 대상은 x밖에 없기 때문에, y∈{x}는 x=y를 의미합니다. 이는 최초에 가정한 x와 y는 다르다는 것에 모순입니다. 즉, (x≠y) → (x≠y) ↔ x=y이고 귀류법에 의해서 x=y입니다.

 

따라서 G를 만족하는 대상은 유일합니다.

 

 

 

 

이러한 괴델의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은 문제가 있습니다.

 

 

1. 괴델의 공리체계는 절대악(summum malum)도 증명 할 수 있다.

 

 괴델의 공리와 정의와 정리에 쓰인 P라는 성질 즉, being positive라는 성질을 Negative라는 성질로 바꾸어 봅시다. N(x)를 'x는 negative라는 성질을 만족한다'로 정의하고 P를 N으로 바꾸면, G의 정의는 '모든 negative 성질을 모아둔 개념'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단어만 바꾸면 공리체계의 논증에 의해서 우리는 절대악의 존재를 얻게 됩니다.

 

 

2. positive라는 개념이 불분명하다.

 

 절차적으로 positive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신존재에 대한 논증은 모순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positive(제가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positive는 '선' '양(陽)' '+'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고, 굳이 positive가 선을 의미하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썼습니다)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가 불분명합니다. 이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죠. 또한, G라는 개념이 모든 positive한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positive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G의 의미 또한 모호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인식론적으로 positive라는 개념은 개개인의 머리에 있겠지만 신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만족할/만족하는 성질인 positive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positive라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으면 우리는 positive개념의 외연(extension)을 정할 수가 없습니다. 즉, positive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것이 positive라는 속성에 속하고 안 속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positive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신의 속성인 '전지전능'이 positive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됩니다. 개인의 머리 속에 각각 positive라는 정의가 있겠지만, 그것이 객관화되지 못하면 우리는 '전지전능'과 positive와의 관계성을 엄밀하게 따질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속성에 대해서도요. 뭐 일반적으로 합의되는 통념으로써의 positive개념으로는 '전지전능'은 positive합니다만, positive인지 negative인지 불분명한 대상에 대해서는 positive개념이 객관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이상 G의 개념은 모호하게 됩니다.

 

 

3. 객관적인 신과 괴델체계에서의 신

 

 우리가 증명한 것은 온전하게 실체로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괴델의 체계 속에 있는 신을 증명한 겁니다. 괴델이 세운 공리와 정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을 증명한 것이죠. 쉽게 말해서 괴델 머리 속에 있는 신이라는 관념이 투영된 논리체계를 증명한 겁니다. 그렇다면 괴델체계 내에서 증명된 신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존재할 것이라 생각되는 신이 일치하는지 안하는지는 이 논리체계 내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저 신존재 증명에 관한 논리체계에서는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존재할 것이라 생각되는 신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죠.

 

 

4. 칸트의 인식론적 비판

 

칸트의 인식론은 경험론과 합리론을 엮은 철학입니다. 쉽게 말해서, '직관(감각)되지 않는 대상ㅡ물자체ㅡ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식을 할 수 없다'는 인식론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신은 신학적인 여러가지 문제를 제외한다면 인간은 신을 감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은 물자체이고 우리는 신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죠. 칸트는 물자체에 대한 불가지론을 핍니다.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죠(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알 수 없다는 뜻). 따라서 칸트에게 괴델의 존재론적 신증명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유로 신을 정의한다고 해도, 그 신이 인식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신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죠. 신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있는지 없는지를 인식론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죠.

 

 

5. 경험론적 비판

 

경험론은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관념론을 부정하면서 나왔습니다. 데카르트의 관념론이란 '사유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로 일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그의 저서 『성찰』에서 신존재를 '사유'로서 이끌어냅니다. 데카르트 체계 내에서 신은 논리적으로 사유&정의된 것이고, 따라서 데카르트 관념론 체계에서 신은 존재합니다.

 경험론자는 사유로써 신을 이끌어 낸 데카르트에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물론 여기서 경험론과 관념론/합리론의 세계에 대한 입장 차이가 나옵니다만... 여튼 그런 논의는 제외하고, 경험론자는 저렇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는 관념과 물리세계가 일치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로부터 붉어진 것입니다.

 괴델 역시 '논리기호'라는 순수사유만을 통해서 신존재를 증명해내었습니다. 괴델의 체계를 통해 신존재가 증명되었다면 그것은 데카르트 관념론 '사유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는 입장을 따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괴델의 증명 역시 관념론에 속하고 경험론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경험론과 관념론 중에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플라톤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어 수천년동안 흘러오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어느 것이 맞는지는 개인이 선택할 나름이지요. 여튼, 괴델의 신존재증명법은 전형적인 관념론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관념론에 해당하는 문제에 빠지기 나름이구요(반대로 경험론을 택한다면 경험론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재반론을 할 수 있습니다.

 

 

1. 경험론자에 대한 비판

 

 괴델의 논리체계의 논증이 옳고 신이 그렇게 정의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비판할 경우에, 그렇게 말한 사람은 경험론적 입장을 띄게됩니다. 경험론은 '감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의 유일한 근거는 감각성이다'으로 압축됩니다. 이런 입장을 띄게 될 경우, '인간의 자아/이성/사유/인간의 선험적 관념체계'는 경험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 데이비드 흄의 경험론에 와서는 '학문' 자체가 필연성이 없다는 것이 경험론의 테제로부터 증명됩니다. 관념론을 제외한 경험론을 받아들일 시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나' '자아' '생각' '학문'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2. positive 개념의 모호성에 대한 재반론

 

positive의 개념이 모호하면 positive를 모두 가지고 있는 신의 개념 또한 연역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괴델체계 내에서는 positive에 대한 것이 다루어지지 않았구요. 하지만, positive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외부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positive라는 개념에 대해서 전혀 논하지 않아도 됩니다. 개념이 모호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positive에 대한 정의와 인식은 외부세계에 실재하는 positive 개념과는 독립적인 사건이기 때문이죠. 이는 '플라토니즘(platonism)' 혹은 '물리세계에 대한 실재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물리세계-외부세계에 대한 실재론적 입장을 택한다면, positive 개념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당대 집합론의 최대로 난제일 만큼 어려웠던 '완전성정리'와 '불완전성정리'를 23살 24살에 증명하고, 30대초에 '연속체 가설의 증명 불가능성'을 증명한 쿠르트 괴델이 positive로 생길 모호성을 몰랐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누구나 한번 훑어보면 지적할 수 있는 문제이거든요. 따라서 저는 괴델이 물리세계-외부세계에 대한 실재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positive 문제를 괴델 자신이 해결할 필요가 없거든요. 왜냐면 positive는 외부세계에 실재하니까! 수학에서의 플라토니즘ㅡ수는 물리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실재하고, 수학자가 할 일은 그 세계를 발견하는 것뿐이다는 주장ㅡ은 거의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관념 또한 외부에 실재할거라고 보는 것도 플라토니즘에서는 개연적일 수 있죠.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직관주의 수학(intuitionistic mathematics)이 있겠습니다만, 플라토니즘/외부세계 실재론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전 괴델 역시 그쪽이라서 굳이 positive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구요.

 

 

 

<그렇다면 우리는 신존재증명과 관련하여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저는 솔직히 이런류의 신존재증명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아니 개인적으로 이런 식으로는 신을 증명/반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언어로 신을 증명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신존재를 언어로써, 논리로써, 학문으로써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걸까요? 아니요. 저는 이러한 논의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 결론이 어떻게 되든요. 이러한 사유들은 그 자체로 우리가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더 합리적으로 신존재에 대해서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든요. 비록 당장은 이러한 논의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보일지라도, 저는 학문의 정합성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신존재에 대한 논의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겠네요. '신존재를 논의하는 것은 무가치하지 않다'

 

'신존재를 논의하는 것은 가치가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많은 주장이 있겠고 다툼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신존재를 논하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신존재가 종교에서만 파생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허구이고 무가치하기 때문에(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은 종교는 악이라고 하겠지만) 신과 종교 모두 세상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논리적 결함들이 있는 문제이거든요. 신존재를 제외하고도 '종교는 무의미하다/악이다'는 주장이요. 뭐 종교가 심리적 위안을 준다는 저차원적 발상은 아닙니다;; 근데 이에 대한 논의는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기 때문에(또한 제 미래의 학위논문과 관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룹시다.

 

 여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신이 종교에서만 파생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고 신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것이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제하더라도 신존재와 관련한 문제는 넓은 차원에서 발생합니다. 가령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신을 섬기는 종교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이런 문명이 전개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 신존재는 전혀 사유되지 않을까요? 신과 관련한 사유들이 이슈화되지 않고 전혀 문제화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세계'라는 단어를 쓰는 순간부터 신의 존재를 사유하게 됩니다. 세계의 구축과 관련해서요. 아니 그 세계에서는 신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다른 단어로 이 개념이 사유될 수 있겠네요. 뭐 여튼 그건 상관없지요. 각설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이고 세계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신존재에 대한 사유와 우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와 신이라는 존재가 연관되어 있고, 연관되어 있다는 자체가 사유의 가치가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는 저기 아프리카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래알과 우리가 가지는 연관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신존재는 '나의 존재를 연역적으로/귀납적으로 추동한 원인은 무엇인가' '세계구축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나는 어떤 성질을 지니는가' '역사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등과 관련하여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 그리고 물리학이라는 학문과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시작되어서 여기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구요.

 

 그래서 저는 신존재와 관련한 사유가 무의미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와 큰 연관성을 지니니깐요. 뭐, 자본주의 시대에는 크게 연관이 없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결론적으로 저는 비록 괴델의 저 증명법이 탐탁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에 대한 사유틀과 비판들은 다시 후대에 건네지고 발전될 것이니까요. 또한 무의미하게 보이는 신존재에 관한 사유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사유들을 통해 우리는 천천히 나마 신존재에 대한 사유를 완성시켜 나가고 또한 우리의 사유체계나 방법론,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한 접근법이 향상되어 나갈 거니까요.

 

 

 

글을 맺으며ㅡ.

 

 우선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는데 괴델의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을 조사하고 증명하다보니 괴델이 사용하는 논리체계가 1차술어(first order predicate)가 아니라, 양상논리(modal logic)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1차술어로 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양상논리는 이 글을 증명하면서 처음 배웠습니다. 괴델체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논문과 자료들을 읽으면서 저 역시 공부한 것이죠. 새로운 걸 배우고 다루다보니 포스트하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꼬박 4일이 걸렸어요; 뭐 그래도 결국 이 포스트를 완성했고, 전혀 몰랐던 양상논리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양상논리를 공부했으니 조만간 수학 카테고리에 양상논리학에 대해서 쓸 생각입니다. 양상논리학은 네이버에 쳐도 논문만 몇개 나오지 글이 없거든요; 다 구글링으로 modal logic을 쳐야 나옵니다. 그리고 최대한 쉽게 쓴다고 썼는데, 과연 몇명이나 이 글을 보고 이해할 수 있으련지 모르겠네요. 음... 저는 솔직히 괴델체계에 대한 해석부분은 하나도 안읽고 비판&재반론 부분부터 읽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학/수학 전공해서 저걸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깔껀가 고민하지 않는다면요ㅋㅋ

 여튼, 정말 오래걸린 포스트였고 보람차고 저도 얻은게 많았습니다. 음... 제가 이런 글을 썼다고이 글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거나한다는 건 아닙니다. 전 순수한 목적(?)으로 이 글을 포스트했거든요. 순전히 괴델의 존재론적 신증명이 어떤 것인가 궁금해서 찾아본 것 뿐입니다ㅋㅋ

 

 

도움받은 곳

 

본대학교 논리학 교수 Elke Brendel의 Gödel's Ontological Proof of the Existence of God


http://skepticsplay.blogspot.kr/2009/06/godels-ontological-argument-step-by.html 외국 블로거

 

http://math.stackexchange.com/questions/248548/godels-ontological-proof-how-does-it-work 수학사이트

 

워털루 대학의 Christopher G. Small 교수의 논문 Reflections on Gödel’s Ontological Argument

 

 

크게 위의 4가지에서 관련 지식들을 얻었고, 특히 Brendel 교수님의 논증방식을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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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집합론

 

저번 시간까지 다루었던 프레게(Frege)의 외연 개념은 현대적으로 소박한 집합론(naive set theory)라고 불립니다.

 

쉽게 말해서,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모든 집합의 개념이 '소박한 집합론'에 속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 소박한 집합론은 칸토어(집합론의 창시자)에 의해서 명확히 정의되는데요, 칸토어의 집합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By a set we are to understand any collection into a whole M of definite and separate objects (called the elements of M) of our perception or thought"

 

 

해석하자면 이렇습니다.

 

"집합은 우리의 인식이나 생각에서 명확하고 분리될 수 있는 대상들을 하나의 모임(collection)으로 하여 M이라 하는 것"

 

notation(기호)으로는 M={}(공집합), {0} {m} {1,2} 등등으로 나타납니다.

 

칸토어의 집합 정의를 더 간단하게 보면 이렇게 쓸 수 있습니다.

 

 

A set is a collection of objects called its elements. If A is a set and x is an element of A, we write x∈A. Otherwise, we write x∉A.

 

이 정의가 드디어 우리가 아는 중고등학교 수준의 집합입니다.

 

 중학교 때 처음 집합을 배울 때, 집합을 나열하는 것에는 '조건제시법'과 '원소나열법'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조건 제시법은 {x ㅣ x is a positive integer}와 같이 원소의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원소나열법은 {1, 2, 3, 4, 5 ,6 …} = the set of a positive integer 이렇게 원소를 직접 나열하는 식입니다.

 

 

 

프레게의 외연(extension)개념은 이런 소박한 집합론에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번 포스트에서 증명했다시피, 프레게의 외연개념은 러셀의 역설에 의해서 논파됩니다.

 

러셀이 비판한 건 프레게 체제 속에 들어있는 '소박한 집합론'의 개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 성질(property)을 만족하는 것들의 모임(collection)을 집합(set)으로 정의할 때 생기는 모순이었습니다.

 

 

다시 간단히 러셀의 역설을 살펴볼게요.

 

프레게의 외연개념과 칸토어(Cantor)의 집합 개념에 의한다면, 이런 집합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R={x ㅣ x∉x }

 

이는 칸토어 집합론에서는 문제가 없이 만들 수 있는 집합입니다.

 

하지만

i)  R∈R

ii) R∉R

를 따질 경우

 

R∈R ↔ R∉R의 결과를 낳게 되어, R={x ㅣ x∉x }이라는 집합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내포하게 됩니다.

 

따라서 러셀의 역설이 합당한 것이라 여겨진다면 칸토어가 만든 집합의 개념은 수정되거나 축소되어야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많은 집합론들이 건설되었고, 그 중에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ZF집합론(Zermelo-Fraenkel Axiomatic Set Theory)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쉬어가는 것으로 칸토어의 무한수에 대해서 잠시 다루겠습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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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애니리뷰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라는걸 알았다ㅠㅠ

 

그리고 작성하는 시간에 비해서 읽는 시간은 정말 짧다는 것ㅠㅠ

 

내...내가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데 겨우 이 정도 분량인가!!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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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루유리 하지마루요~

(유루유리 시작해요~)

 

하면서 시작하는 애니입니당

 

구성은 1기 12화 2기 12화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런 아이들이 나오는 애니인데, 장르는 백합일상개그물

 

일상개그물이 먼저라 백합의 수위는 개그칠 정도로만 나오긴 하지만 꽤 재미있어요.

 

가령

 

이렇게 동생의 팬티를 뒤집어 쓰는 시스콘언니가 등장한다던가...

 

 

 

언니방에 여동생 포스트가 있다던가... 동생 다키마쿠라가 있다던가...

 

 

뭐 이 언니는 유루유리 2기에서야 등장하니 일단 스킵하죠ㅋㅋ

 

 

메인스토리는

 

 

부원부족으로 폐부된 다도부실을 주인공 일당이 불법점거해서 오락부로 사용하면서 일어나는 일상을 그립니다.

 

이름하여 나나모리중☆오락부

 

 

 

 

 

오락부뿐만 아니라 학생회에서 놀기도 하구요

 

 

 

수학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자, 그럼 주인공들을 살펴봅시다

 

 

 

1. 아카자 아카리

 

설정상 유루유리 메인주인공이지만 공기입니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히로인인 인덱스(천연공기)와는 다르게 설정으로 만들어진 인조공기캐릭입니다.

 

 

 

 

실제로 애니에서 아카리를 이렇게 공기로 만들어버립니다ㅋㅋㅋ

 

 

친구들에게도 대놓고 무시당합니다ㅠ

 

 

 

특징은

 

 

 

 

착...착한 애라는 점?

 

착하고 귀엽고 순수하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자 특징입니다

 

 

 

 

 

2. 토시노 쿄코

 

 

유루유리의 진히로인입니다(아카리 불쌍ㅠㅠ)

 

실제로 유루유리 인기투표 결과도 쿄코가 항상 부동의 1위를 지키구요

 

 

 

 

 

보시다시피 매우 장난끼가 넘칩니다.

 

 

 

럼레이즌을 광적으로 좋아합니다. 푸딩도..

 

 

마법소녀 미라쿠룬 동인지를 그리며 팔기도 합니다.

 

 

 

위의 분홍머리(치나츠)를 광적으로 좋아합니다

자기가 그리는 동인지 주인공(미라쿠룬)과 닮았거든요

 

 

 

 

 

3. 후나미 유이

 

 

어른스러운 캐릭터입니다. 토시노 쿄코가 심한 장난을 부릴때면 유이가 제지해요.

 

 

이런 삐까삐까한 집에서 혼자서 자취를 합니다

 

 

 

음식도 엄청 잘 만드구요(완벽한 자취생!)

 

 

 

 

 

분홍머리(치나츠)가 좋아합니다

 

 

 

 

 

4. 요시카와 치나츠

 

매우 재미있는 캐릭터입니다.

 

토시노 쿄코는 치나츠를 "찌나쮸~"라고 부르죠ㅋㅋ

 

 

 

토시노 쿄코가 동인지로 그리는 미라쿠룽입니다.

어떤가요 치나츠랑 닮았죠?ㅋㅋ

 

 

그리고 후나미 유이를 광적으로 좋아합니다

 설명 : 유이를 바라보는 시청자 시점

 

 

설명 : 유이를 바라보는 치나츠시점

 

ㅋㅋㅋㅋㅋㅋ

 

 

 

그림을 심각하게 호러스럽게 그립니다.

 

 

 

이...이렇게요..

 

그런데 정작 자신은 이걸 인식하지 못합니다ㅋㅋ

 

제작진이 약빨고 이런 작화를 가지고 2기 8화 엔딩을 이 작화로 그렸네요

자세한건 ↓

http://blog.naver.com/ckdgns747?Redirect=Log&logNo=10151008103&jumpingVid=CAF6BD1E7FA5BFDEA6300779640C5C1502D8

 

 

 

 

이상 4명이 메인캐릭이구요, 여기에 학생회 임원들이 같이 나옵니다.

 

 

 

1. 학생회 부회장 : 스기우라 아야노

 

토시노 쿄코를 좋아합니다

 

 

 

2. 이케다 치토세

 

부회장 아야노의 절친이자 학생회 임원입니다.

 

토시노 쿄코랑 아야노가 붙어있으면 안경을 벗고 망상을 하며 코피를 분출합니다.

 

 

 

3. 오오무로 사쿠라코

 

학생회 임원으로 매우 쾌활하고, 민폐끼가 다분한 캐릭입니다.

 

같은 학생회 임원인 후루타니 히마와리를 거유라고 놀립니다.

 

둘은 어릴때부터 친구였다고 합니다

 

 

 

4. 후루타니 히마와리

 

학생회 임원이면서 어른스러운 캐릭입니다.

 

항상 사쿠라코를 챙겨줍니다. 겉으론 쌀쌀한척하면서 결국 사쿠라코를 도와줍니다.

 

츤데레

 

사쿠라코와는 유치원때부터 알던 사이였으며, 나나모리중에서는 학생회 부회장 자리를 두고 라이벌관계에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유루유리 캐릭 중에서는 가장 발육이 뛰어납니다.

 

본인은 이에 대해서 컴플렉스가 있는 듯합니다.

 

 

 

유루유리는 호불호가 갈리는 애니긴 하지만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작화나 스토리, 캐릭터, 개그요소도 꽤나 괜찮습니다.

 

분량도 1기 12화 2기 12화로 상당히 짧은 편이라 시간날 때 한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 그리고 유루유리는 남자캐릭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습니다ㅋㅋㅋ

 

백합물이라 그런지 심지어 지나가는 행인조차 모두 여자일정도;;

 

매우 길긴 했지만 이상으로 유루유리 리뷰를 끝낼게요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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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에 만발해있는 부정과 비리 횡포 등에 대한 나의 생각.

 

 사실 나도 뉴스나 여러 가지로 부정한 일들을 보게 되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제도적~(기타) 차원에서의 시각.

 개인적으로는, 그냥 우리가 뉴스나 소식 들으면서 느끼는 바들이다. "망할놈들"

 

 하지만 이 문제를 좀더 제도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지금 비리를 저지르는(국가와 인종, 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비리를 저지르게 되어있는걸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본다. 직위나 비리 이런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보면, 그들과 평범한 사람들은 구별이 가지 않는다. 똑같은 그냥 길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나는 커서 비리를 저지를 놈이다!" 이러지 않았다면,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자리와 제도, 구조'라고 보고싶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경인이, 사람이 자리를 만들까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거 아닌가?"
 "아니여.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거여."

 

 지금 다시 이 대화를 기억해보건데, 아주 높은 확률로 사람보다는 자리가 사람을 규정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대화는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for 'any person', if we put him in 'certain situation' then we can get a result that most people act similarly"

 

 한국어로 적는 것보다는 영어로 쓰는 것이 좀더 의미가 명료해 보여서 썼으니, 부디 영어 썼다고 재수없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길.

 

 여튼, 어떤 사람에게 input을 제공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비슷한 output을 보일 거라는 의미. 그리고 이 생각은 얼추 맞는듯하다. 왜냐면, 실제로 대학시절에 운동권하면서 빨갱이 취급받던 사람들 중 일부가 지금은 비리와 관련된 이유가 '직장'과 사회구조에서 말미암는다는 게 합리적이게 보이니까.

 

 다시 말해서, 지금 나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만약 그런 구조와 사회와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단순히 평범하게 살아갔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이는 전쟁상황에서 크게 검증되는 바이다. 나치시절 나치정권에 복종했던 사람들, 박정희 시대 헌법을 무시하고 판결때린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협조한 사람들. 만약 그 시대가 아니라 평화롭고 평범한 시대였다면, 그 사람들이 '폭력적이고' '위법적인' 사람들이었을까?
 
만약 이 논지에 동감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비리들과 문제들에 대해서 단순하게 개인을 비판할 수가 없다. 아니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어떤 인간에 대해서든. 왜냐면, 그냥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같은 행동양식과 구조를 겪게 하고 그 자리에 나두면 '높은 확률'로 같은 행위를 하게 될테니까. 그건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한다. 나도.

 

 그래서 단순히 그들을 개인적인 '비리'로만 비판할 수 없다. 그런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특정한 input이 제공되면 누구나 대부분 그렇게 될테니까.

 

 따라서, 중요한건 그런 개인들에 대한 비판과 그런 구조와 제도, 자리를 만드는 input과 제도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중요한건 세계를 해석하는 것(think)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act)"라고 했던 걸 잊으면 안된다. 비판과 더불어 행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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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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