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교수의 日本이야기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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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독후감이라고 하면, 초등학교 때 써보고 이후에 써본 적이 거의 없어, 오히려 서평을 쓰는 것이 편하고 좋았을 듯하다. 하지만 독후감은 또한 그 나름대로의 쓰는 맛이 있어서, 저번 서평과는 달리 엄밀성과 분석성에 대한 강박관념ㅡ이는 철학교수를 지향하는 나에게는 당연하게 생기는 결과인 듯하다ㅡ을 버리고 내가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서술할 수 있겠다.

철학과 지망생으로써, 나는 특히 인간의 인식 일반에 대해서 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2학기의 수업들은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수강신청을 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깨버린 과목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교육학과 강성훈 교수님의 <교육사상가론> 강의이고, 다른 하나는 김현구 교수님의 <역사는어떻게서술되는가> 강의이다. 이 독후감은 김현구 교수님의 저서김현구교수의 日本이야기를 대상으로 하는데, 저서에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과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은 대개 선점된 인식에 의해서 아주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에 충돌하는 인식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식은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된다. 선점된 인식의 지속기간이 길어질수록, 인식의 유효성ㅡ인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ㅡ은 강화된다. 나는 이런 현상을 인식의 선점성에 대한 보수화라고 말한다. 난 책에서 그런 것을 잘 설명해주었다고 본다. 가령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이데올로기라는 인식을 부여받았다. 한국에서 출생·교육·문화생활·취직 등 생활 전반을 누리기에,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수록 한국 이데올로기는 강화되는 것이다. 이에 충돌하는 인식은 일본 이데올로기인데, ‘인식의 선점성에 대한 보수화로 인해 한국인들은 일본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안하고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 먼저 받아들인 것만 옳다고 생각하고 그에 충돌하는 것들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 한국인의 인식을 부정하는 일본 이데올로기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 발생한다. ‘야만적인 일본인이라는 선점된 인식이 뿌리박혀,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상()만 남게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더러운 조선인이라는 인식만이 남아있게 된다.

저자가 밝혔듯이 그런 인식들을 만들고 강화시키는 건, 언론과 교육이다. 교육에서는 마냥 한국이 일본에 시혜를 베풀었다는 식의 논지를 피고, 일본은 침략국가다는 식의 인식을 심어주었다. 언론에서는 확인도 해보지 않고 일본이 자동차 매연을 뿌려 황영조 선수의 기록을 떨어트렸다는 식으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켰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은 당연하게도 일본에게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 그런 인식은 강화되고 보수화될 뿐이다. 책에서는 저자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갖가지 사례들로 그런 인식들을 타파하였다.

저자는 상당한 수준으로 현상의 표면적인 면과 이면적인 면을 분석했다. 나는 일본인들이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는지는 익히 들은 바가 있어서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런지는 어느 곳에서도 알 수 없었다. 책에서는 그런 것들을 자연·역사적 환경에 의해서 잘 설명해주었다.

먼저 가장 놀란 것은 일본의 혼탕·의복·샤워문화였다. 예전부터 일본인들이 과거에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건 알았지만 높은 습도라는 자연적 조건에 의한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이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만을 가지고 일본인은 역시 야만인이야라는 인식을 강화했을 것이다. 또한, 평소에 일본이 성적으로 매우 개방된 나라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런지는 책을 읽는 순간에야 알 수 있었다. 높은 습도로 인해서 겉옷을 입지 않고, 따라서 나체를 보이는 것이나 혼탕에 가는 것이 익숙해지고, 그런 것들로 인해 성문화에 개방적이 되었다는 것. 한국인들은 일본은 성적으로 문란한 국가다라는 인식이 있어서, 일본 남성들이나 여성들을 그런 식으로 자주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생성되었고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는 이제야 알겠다.

다음으로는 일본인의 직업의식에서 크게 놀랐다. 백화점의 구두를 환불하러 갔을 때, 정성을 다하여 손님을 대접하는 모습은 결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한 달 전 즈음에, 아는 누나가 시계를 고치러 해당 브랜드의 수원지점에 갔었다. 그 누나는 수원에서 서울로 이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직원에게 혜화지점에서 받아도 되냐고 물어봤었고, 직원은 된다고 대답했다. 수리비는 선불이었다. 수원에서 누나는 비용을 냈었고, 혜화에서 시계를 받으려 했으나 혜화지점에서는 수리비용을 따로 청구했다. 누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혜화지점에서는 수원지점 잘못이라고, 수원지점에서는 혜화지점 잘못이라고 모두 책임 회피만 했다. 이런 경우는 주위에서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 이것은 가게에 발을 뚝 끊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난 거기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일본인은 착하고 한국인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야마토 시대의 씨성제에 의한 결과라는 것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현상의 이면을 보는 건 좋은 학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씨성제에서 비롯된 일본인의 직업의식·장인정신을 보고 또 다른 생각도 해보았다. 책의 전반적인 부분이 그렇게 말하는 듯한데, 특정 문화 속의 개인은 그 개인이 속해 있는 바로 그 문화에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 말이다. 저자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문화에서 발생한 것들이 좋아 보인다고 자기 문화에 그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 가령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자녀에게 일본인의 사고를 가지고 너는 가업을 물려받아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집안을 빛내거라라고 말하는 것은 얼토당토않는 발언인 것이다. 이는 다른 배경의 문화를 가져올 때 유의해야 하는 점을 아주 잘 알려준다. 마치 일본이 외국의 문화나 기술을 일본 문화배경에 맞게 가져 온 것처럼, 외국의 문물을 가져 올 때는 자국의 상황에 맞게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책에서 한국과 일본이 감성적으로나 사회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이 이용된 사례들을 보였었다.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느끼는 예비군·노래방·택배 등이 모두 일본에서 건너왔고, 많은 교재나 방송내용이 일본을 모방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건 실생활에서도 느끼는 것인데, 가령수학의 정석이나성문종합영어가 모두 일본 것을 번역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노래방 같은 건 한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처참히 깨졌다. 이는 얼마나 우리 일상에 일본문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얼마나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도 잘 알려준다. 그건 한국인의 정서가 일본인의 정서와 닮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일본은 이걸 아주 잘 이용하는 듯싶다. 이걸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 또한 일본에 그런 식으로 문화산업 수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너무나 감정적으로 일본을 대하고,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일본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는 많이 힘들 것 같다. 일본문화가 한국문화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본과 한국이 정서적으로 닮아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을 것이고, 따라서 일본인과 정서가 유사하다는 한국인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이런 인식을 버리고 우리가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해서 일본에도 현대 한국문화를 더 잘 심어주었으면 한다.

또한 사회구조적인 유사성도 잘 이용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먼저 달성한 나라인 일본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지 잘 보여준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합리화의 방향이 그 사례다. 책이 쓰인 1996년에 비해서, 2013년 현재 한국은 상당히 합리화가 되어, 더치페이나 자기 잔에만 술을 따라 마신다던가 하는 것은 꽤나 일반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합리화로 나아가는 중이므로, 전통문화와 합리적인 사회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해결방법은 일본에서 아직도 많이 얻어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회구조적으로 한국은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이미 고령화를 맞은 일본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문화가 일본문화와 비슷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차이는 있으므로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처방법도 한국식에 맞게 변형·발전시켜서 가져와야 할 것이다.

저자는 전국시대 때의 이끼노꼬루(살아 남는다)라는 문화와 막부시대의 역사·문화로 집단의식·준법의식·노력·경쟁·상호공존 등의 관념을 추출한다. 물론 집단이나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이지메를 당하거나, 일본인의 인식에 제국주의나 군국주의(위안부 등의)의 대상이 되겠지만, 적어도 상호공존만큼은 우리나라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책에서 잠깐 이를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싸울 때 정말 극과 극을 내달린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당파싸움에서도 그랬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의 것만을 관철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당연하게도 세도정치와 민란, 더 나아가 조선 멸망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현재에도 그런 경향이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상호협조하고 공존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성향에 따라 극과 극의 대립논조가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크게 싸우면 대개 싸운 이후에는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이런 갈등들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부분은 일본은 야만국이다는 식의 생각을 버리고 겸허하게 장점을 가져오면 좋겠다.

지금까지 저자가 일본인의 문화·행동·사고관에 숨어있는 것들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보여준 것을 잠시나마 간단하게 살펴보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들을 중점적으로 서술했다. 분량제한이 있어서 저자가 소개한 모든 것들을 글에 담을 수 없을뿐더러, 서평이 아닌 독후감 형식이기에 저자의 의도보다는 책을 읽다가 나에게 직접 와 닿는 부분을 중심으로 글을 써내려온 듯하다. 따라서 저자가 독자에게 원하는 말인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ㅡ책에서는 일본을 잘 알아야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는 논지ㅡ은 좀 소외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논지 역시 내가 서술한 것들에 어느 정도 스며들어 있다. 전술(前述)했듯이 순전히 일본이 야만국이라고 하기에는 자연환경이 너무나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고, 또한 일본이 나쁜 국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가 얻을 게 많다. 하지만 맨 처음에 말한 것처럼 한국 이데올로기가 이런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장점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애를 먹인다. 나는 우리가 이것을 극복한다면, 일본을 더 잘 이해하고 한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서술했고, 그렇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다. BC 3세기~AD 3세기 정도에 한반도인의 집단이주, 야마토 정권, 임진왜란, 한일합방 등의 사례가 있었고, 지금은 기자재 수입·수출관계에 있어 경제적으로도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다. 또한 보기 싫어도 봐야하는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관계를 자세히 논해주고 있으며, 한일 관계를 잘 유지·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책을 통해 인간의 인식을 더 잘 알게 되어서 너무나 좋다. 한번 확정되고 지속된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고, 그에 반하는 인식을 거부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인식틀만을 가지고 다른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이데올로기(가령 일본 이데올로기)를 타당한 이유없이 거부하고 비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훌륭한 학자는 아니더라도, 좋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인지하고, 항상 나의 주장과 나의 인식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학문에 정진해야겠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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