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철사 기말 페이퍼

수업 2020. 3. 25. 13:45

<교육의 영역이 되어야 하는 지식·진로·인격에 대하여> 

나는 교육, 특히 학교교육의 주된 역할이 지식·진로·인격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선정도서들을 보면서, 또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반추해보며 내가 받아온 교육들을 위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실제로 하고 있는 것, 혹은 하지 못한 것, 따라서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언급할 것이다.

우선 교육이 지식·진로·인격과 관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지식전달로서의 교육은 실제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이 지식전달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진로와 인격이 학교현장과 관련되어야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선 진로에 대해서, 적어도 내가 겪어온 학교현장에서는 그것은 학교의 책임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책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적어도 내가 겪어온 교사들은 진로는 자신이 정해야 하는 만큼 자신이 직접 여러 가지를 찾아보아야하고, 그에 따라 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학교와 관련되더라도, 교사들은 매우 소극적인 측면에서, 학생들이 잘하는 과목들에 대해서 그쪽 방면으로 진로를 정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러나 나는 진로 역시 교육의 현장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한민국 현실 안에서, 학생들이 직접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진로를 선택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에도 중학교 시절부터 수능을 보기까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길게는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했다. 이는 당면한 대학과 수능이라는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학생시절 진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대학에 가기 위해 제도적으로 주어진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나와 친구들은 따라서 우리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여건이 부족했다. , 이것은 우리들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교사들은 주말에 남는 시간에 진로를 고민하라고 했지만,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애초부터 우리에게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주어진 적이 없었고, 학교 외에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것이 학생 개개인들에게만 맡겨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를 탐구할 수 없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학교와 입시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학생이 진로를 고민할 수 없는 것에 학교의 책임이 크다면, 그것을 풀어나갈 실마리 역시 학교가 제시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이 정도의 약한 이유라도 학교에서 진로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논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인격교육이 있다. 이는 우선 클래스를 살펴보자. 책에서 많은 아이들은 프랑스인이 아니고, 또한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가 없거나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거나 약자에 속했다. 책의 서술들을 보면 명시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환경들이 생활태도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교사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아이들만을 바라보고, 그 아이의 생활태도가 나쁘다는 것만 지적하거나 처벌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거나 할 뿐이다. , 책에서 서술되는 교사들은 아이들의 배후에 있는 환경들을 보지 못하고, 그것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조롱한다. 나는 책에서 나타나는 교사와 아이들과의 작용이 감정노동에 속하며, 교사도 사람이기에 화도 내고 불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학교차원에서는 그런 것들을 해결하려는 태도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소설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인격문제에 대해 그것은 학교교육의 영역이 아니며 가정교육에서 끝났어야한다고 말하면서 처벌을 하거나 경고를 주는데서 그친다. 나는 교사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학교교육제도가 인격을 교육으로서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격이 학교교육 안에서 해결되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는 단순하다. 교육제도 안이 아니면 해결되기가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격교육이 가능하다면, 학생의 입장에서 그것은 가정 혹은 학교에서 일어나야 한다. 만약 인격교육이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그것은 학생 스스로 인격을 깨쳐야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높은 확률로 인격이 무엇인지, 왜 도덕적인 규범들이나 사회적인 규범을 지켜야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것이다. 학교나 가정 외에 그런 것들을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교육은 학교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상황에서, 인격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격교육이 가정에서 온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인격을 부모를 포함한 환경에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 학부모는 아이의 인격에 대해서 시간상 많은 영향을 주기가 어렵다.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부모의 인격적 성숙도가 아이의 인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어도 임의로 태어난다는 관점에서는 매우 우연적인 요소에 인격을 귀속시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학교에서 학생들의 태도에 따라 처벌하고 매우 높은 강도에서 퇴학시키는 것은, 매우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요소에 따라 학생을 대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학생들은 자신의 인격에 대해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성찰할 기회도 없이 살아온 바, 그런 삶의 관성에 따라 처벌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다르게 태어났으면 처벌받지 않을 우연성에 인격이라는 요소가 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국가에서 가정에 인격교육과 관련된 제도를 만들거나, 그것이 학교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정은 매우 사적인 공간으로 국가가 일부일처제라는 가족의 형태를 제외하면 규제할 수 있는 것이 크게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인격의 문제는 학교가 맡아야 하며, 교육의 영역에 있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위와 같은 생각에 따르면, 나는 학교가 지식·진로·인격의 문제를 교육이라는 제도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로와 인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루었으므로, 당분간 나는 내가 느꼈던 지식교육의 문제와 관련된 학교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나는 학교에서 지식교육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정확히 화재 감시원에서 공격하는 지점에서 현재의 지식교육 방식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인공의 주장을 좀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우리의 교육은 실제현실이 아니라 말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책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는 계량적으로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기계적인 서술로만 쓰일 수는 없다. 역사는 현실에 대해서 말하며, (적어도 시간여행을 겪은 주인공에게는) 전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현실의 영역이 아닌 말의 영역에서, 기계적인 서술의 영역에서 배운다. 말하자면, 우리는 역사 안에서 사람들이 겪었던 그 생생한 현장과 체험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이, 어떤 공감과 공유가 없이 말로만 배우는 것이다. 더 강한 주장으로 나는 학교교육의 모든 교육이 말에 대한 것이며, 현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록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직접적인 현실들에 대해서 말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어떤 함축을 지니고 어떤 것이었는지를 체험할 수 없다.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교과의 경우 적어도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이론을 가르치며, 그것들이 적용되는 사례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하고, 말로써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직접적인 현실이었고, 실제로 현실에 관한 것이 학생들의 직접적인 인생에 닿지 못하고 말로써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위와 같은 학교 안에서의 지식 문제에 대해서 어떤 면에서는 매우 관념적인 대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 지식교육은 말로써 대상을 그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제적으로 그것을 현실에 와 닿게 해야 한다. 가령 사회교과에서 나타나는 이론들이나 현상에 관련하여 가장 현실과 가까운 지점에서 어느 정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말하자면 관련한 시청각자료를 사용하거나, 학생들이 직접 문제의식이 있는 주제를 뽑아서 정기적으로 글을 쓰거나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이 학습내용이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곳에 가서 적용을 하거나, 답습하는 과제를 통해 현실로서 교육내용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진로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학교가 직접 학생들이 탐구할 시간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만큼, 학교에서 내용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 진로에 관련된 수업이 정기적으로 열려야만 한다. 이미 서울권의 몇몇 학교에서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교육청에서 직접 진로와 관한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진로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단체들을 교육청에서 고용해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안과 밖에서 여러 진로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각기 분야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실제 현장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고등학교에서는 3년 동안 2-3번 정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나는 이것이 배정된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관심 있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연락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지속적으로 단체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진로상담단체를 국가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래스의 일부에서처럼 단순히 아이들이 무슨 과목을 잘하고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고 그쪽으로 진로를 정해보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무책임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 인격이 관련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나는 학교가 학생의 인격을 담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교사에 의한 개별적인 상담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측면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클래스에서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여러 학생의 퇴학까지 이르는 것은 그것을 학교 내에서 제대로 다루어줄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학생 간의 불화나, 교사와 학생 간의 문제가 있을 때 우선은 교내 전문상담교사를 통해 중개가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교사들 역시 정기적으로 전문상담교사를 통해서 학생들의 인격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수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격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중고등학교에 윤리라는 새로운 과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목은 시험이 없으며, P/F로만 평가해야하고, 매 수업마다 윤리적인 이슈들(역지사지, 페미니즘, 가부장주의 등)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주로 학생의 토론이 있어야 하고, 교사는 그것들에 대해 학생들이 각각의 윤리적인 기준을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최소한 두 번의 글쓰기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윤리관 등을 교사와 상호작용하며 교정하거나 발전시켜야 한다. 나는 이것이 포괄적인 의미에서 학생들이 균형 있는 윤리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격을 다루는 과목의 문제는 예비교사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교육대나 사범대에는 예비교사의 인격을 다루는 과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수업 역시 P/F로 이루어지며 교양필수 혹은 전공필수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목에서는 3-5명 정도가 한 그룹을 이루어 한 학기를 이어나간다. 학생들과 교사의 갈등, 학생들과 학생들의 갈등, 교사와 학생의 역할, 인격이라는 주제로 매 시간 짧은 텍스트가 주어질 것이다. 수업시간 내에 예비교사들은 텍스트로부터 교육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갈등의 경험에 대해서 같은 그룹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주어진 문제 상황에서 어떤 것이 가장 최선의 방안이며, 교사 개인과 제도가 더 보완할 수 있는 측면은 무엇인지를 나누어야 한다. 이를 통해 매주 수기를 작성하여 교수에게 제출하며, 교수는 학생들과 적어도 한 차례 수기를 기반으로 인격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위에 제시된 내용들이 식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선정도서들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thing before word라는 리얼리즘의 사조처럼, 나는 지식교육이 단순히 어떤 말들의 언어적 결합들을 습득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말들이 지시하는 것은 현실의 어떤 대상들이고, 따라서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배워야하는 것은 실제 현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의 부족한 진로고민 시간들이 학교의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의미 있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 구체적으로는 수도권의 몇몇 학교에서 사업체들을 통해 시행되는 진로상담들이 제도화되고, 나아가서는 학생들이 직접 단체와 연결되어서 진로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으면 했다.

인격의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이 많았다. 내가 제시한 것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은 것 같으나, 적어도 나는 인격의 문제가 단순히 가정사적인 문제나 개인의 문제로 국한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실제적 폭력뿐만 아니라, 인격의 어긋남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폭력의 영역일텐데, 전자는 그를 해결하는 절차가 있는 반면, 후자는 단순히 개인의 성품문제로 치환되는 경우가 많고 학교나 사회에서 어떻게 함양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격의 문제가 학교에서, 더 나아가서는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맞벌이나 여러 환경으로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가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가는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는 갈등을 조정하는 전문상담교사가 있어야하고, 학생들은 학교라는 정규적인 틀 안에서 인성교육을 배워야만 한다. 나는 윤리라는 과목을 통해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균형적인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면 했다. 또한 클래스와 같이 학생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는 교사들, 혹은 갈등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교사들을 위해서 교직수업에서 자신의 교육관을 나누고 학교 갈등의 문제를 예비교사들끼리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

5년전에 쓴 건데 지금 읽으면 너무 오글거립니다.



투영으로서의 교육에 대하여.hwp


Posted by 괴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