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지평에서 바라본 호메로스적 아테(ate)

 

·ate(미망, 어리석음) : 행위자 자신이 수행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전혀 예상치 못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또한 아테와 관련된 모든 상황은 행위자 자신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아테는 관련된 행위로부터 후에 파멸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지 못하는 행위자의 어리석음을 가리킨다. 시간적으로는 과거-현재-미래의 지평에 있으며, 인과적으로는 원인-결과의 지평에서 사용된다. 또한 아테 개념은 일리아스에서 중요한 서사적 지평으로 사용된다.

 

cf. 아타스탈리에(atasthalie)는 ate와 대조적으로 예상되는 결과를 추측했음에도 부적절한 숙고로 인한 어리석음이다. 행위의 결과가 행위 이전에 고려된다는 점에서 ate의 어리석음과는 다르다.

 

ex)헥토르는 트로이아 성벽 밖에 군대를 배치함으로써 일어난 결과를 두고 자신의 아타스탈리에 탓에 백성들에게 파멸을 가져다주었다고

한탄함. 이때 헥토르는 자신의 아타스탈리에가 폴뤼다마스의 충고를 듣지 않은 탓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1) 아가멤논의 경우

“아카이오이족도 종종 그런 말을 하며 나를 비난하곤 했소. 하지만 그 탓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운명의 여신과 어둠 속을 헤매는 복수의 여신에게 있소이다. 아킬레우스에게서 내가 손수 명예의 선물을 빼앗던 그날 바로 그분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속에 사나운 아테(ate)를 보내셨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는데 난들 어쩌겠소?”

 

 아가멤논은 크뤼세이스를 내놓는 것을 자신의 체면이 손상된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손상된 체면을 구하기 위해 아킬레우스에게 주었던 브리세이스를 빼앗았다. 아가멤논은 여기까지는 자신의 체면을 회복하는 것을 의도했고, 그것을 위해 브리세이스를 뺏으려고 했다. 또한 아킬레우스의 자존심을 손상시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를 모독한 결과가 희랍군의 패배라는 여파를 가져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행동이 파멸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어리석음을 아테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이는 사건이 일어나고 여파가 온 후에야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기에 긴 시간의 지평 속에 아테의 개념이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노인장! 그대는 내 아테를 거짓 없이 사실대로 지적해주었소. 내가 아테에 빠졌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소. 내가 쓰라린 마음에 복종하여 아테에 빠졌으니, 이를 바로잡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상금을 기꺼이 바치겠소.”

위의 맥락과 동일하지만, 특이한 점은 아테의 원인을 신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과 연관짓고 있다는 것이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도 깨닫게 되겠지요. 아카이오이족 중 가장 용감한 자를 털끝만큼도 존중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테를.” 여기에는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고려되고 있다.

 

2) 아킬레우스의 경우

- 포이닉스는 아킬레우스에게 무자비한 마음을 억제하라고 권유한다. 포이닉스의 발언 후에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를 ‘거만한 마음의 소유자’로 표현하는데 이는 오만(hybris)을 지칭하는 것이다.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가멤논이 오만하여져서 상황을 그르치고 아테에 빠진 것처럼, 아킬레우스 역시 오만으로부터 아테에 빠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포이닉스가 위의 발언을 할 때는 희랍군이 패배하고 있는 도중에도 아킬레우스가 참전하지 않으면 아테에 빠지게 되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오만에 빠져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 파멸적인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아테에 빠지게 되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무구를 주면서 주며 트로이의 성벽까지는 가지 말라고 했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여 헥토르를 만나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파트로클로스 자신도 아테에 빠진 것이지만, 이를 만든 아킬레우스 역시 아테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헥토르 시신유린 : 아폴론이 “연민(eleos)도 존중/수치(aidos)도 없는 자”라고 말했음에도, 아킬레우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는 아킬레우스가 신마저 무시하는 오만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다시 말해 아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테의 해소 : aidos편에서 살펴보았듯이 아킬레우스의 무자비함과 오만, 아테는 프리아모스에 대한 연민과 존중을 통해 해소된다.

아킬레우스의 경우는 『일리아스』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첫 번째 분노로부터 시작하여 오만을 통해 아테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내용이 후반부에 이르러 그것이 두 번째 분노와 지속되는 오만과 아테에 관하여 서술되고, 마지막에 가서야 프라이모스에 대한 eleos와 aidos를 통해 해소된다. 이렇게 보면 아테는 일리아스의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고, 아테가 지닌 서사적 지평을 보여준다 하겠다.

 

3) 아테와 관련한 신적 개입의 문제 : 신적 차원의 합리성과 인간 차원의 비합리성

  아가멤논의 사례와 같이 아테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신들의 개입이 언급된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아테 개념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구성할 때 합리적인 모형을 그리지만, 그에 관한 행위가 파멸적 결과, 여파를 낳을 것이라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호메로스적 영웅들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신이 뜻한 대로 할 수 있음의 한계에 대한 앎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자립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불러오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며, 따라서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한다ㅡ이는 등장인물들이 아테 개념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으로부터 알 수 있다ㅡ.

 

 흥미롭게도 일리아스는 그런 인간의 비합리성을 또 다른 신적 차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모든 일이 제우스의 계획대로 되었다는 것). 이는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비합리적이지만 신적인 차원에서는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인간적 차원에서는 인과의 연쇄가 단절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적인 차원에서는 관련된 인과를 보여줌으로서 세계의 합리성을 설명하려 한 점에서, 일리아스는 일종의 메타적인 합리성을 보여준다.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설명역할을 하는 합리성까지 마련한 것이다.

 

 

 정준영 씨의 서사적 지평에서 바라본 호메로스적 아테(ate)  라는 논문에 대한 요약입니다. 윤리학 발제했던 두 번째 논문입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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