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네이버 블로그에서 긁어왔습니다. 언제 썼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2016년에 들었던 수업일겁니다.

 

 

『일리아스』에서 영웅적 자아의 aidos와 행위패턴

 

·aidos는 맥락에 따라 공경, 존중, 수치, 염치, 부끄러움, 면목, 자존, 명예감, 체면 등으로 사용될 수 있음

 

1. aidos는 공적인 영역에 속해있고, 관련된 행위 기준들은 영웅들의 자아에 내면화된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를 모욕하자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아무런 명예도 없는 재류외인으로 취급되었다고 분노한다. 이는 아킬레우스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자아의 손상을 입어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즉, aidos는 (공동체라는) 공적인 영역에서 사회적 불인정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전투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염려하여 달아날까를 심히 고민하다가, 결국은 전투에 나서기로 함. 심한 내적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영웅적 면모를 선택했다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그리스에서 합의하는 이상적인 자아관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이상적 자아가 내재화되었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었고, 고민 끝에 용기를 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즉, (공적인 가치를 담은) 이상적 자아는 영웅들에게 내면화되어있다.

 

-aidos와 관련된 내적인 자아가 반드시 한 형태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으로의 모욕으로부터 분노를 표출했고, 디오메데스는 아가멤논의 모욕에도 공손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아킬레우스의 자긍심으로서의 aidos를, 디오메데스는 공경으로서의 aidos를 보여준다.

 

cf. Ar. 덕을 갖춘 자는 “확고하고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행위”ㅡ내적갈등을 뛰어넘는 경지ㅡ.

 

2. 영웅들은 자긍심(aidos)을 가지고 영웅다운 행위방식을 통해 공동체의 인정/명예(time)를 추구한다.

 

-공동체로부터 주어지는 명예(time)와 aidos는 큰 연관성이 있다. 이상적 가치가 공동체 내부에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영웅들은 행위에 있어 체면(aidos)을 차려야 하고 이는 aidos가 사회적 인정과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메루스에서 사회적 인정을 대표하는 용어는 명예(time)이다.

 

-명예라는 개념이 일리아스에서 반드시 배타성과 경쟁성의 맥락에서만 쓰이지는 않았다.

 

ex) “···내가 아무런 명예도 없는 재류외인인 양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이 아르고스인들 앞에서 내게 무례하게 대하던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화가 치민다오.”

 

아킬레우스는 명예의 상실이라는 개념을 공동체 밖의 존재로 밀려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므로, 이 맥락에서는 time를 경쟁적 가치로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명예는 공동체적 인정의 징표

 

“그대[아가멤논]와 동등한 선물을 나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소. 치열한 전투의 노고를 더 많이 감당해낸 것은 내 팔이었지만 분배할 때에는 그대의 선물이 월등히 컸소.”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비겁한 자나 용감한 자나 똑같은 명예(time)”를 누리고 있소.“

아킬레우스가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한 것을 공동체로부터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역으로 아킬레우스가 명예를 공동체적 인정의 징표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명예는 (공동체의 승인) 인정의 가치로 사용되었다. 이것을 가지고 맥락을 앞으로 돌리자면, 아킬레우스는 공동체적 인정·명예(time)를 받지 못함으로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time의 이면에는 aidos(영웅으로서의 자존)가 놓여있다.

 

ex) 전쟁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온 메넬라오스가 다시 대열로 돌아가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느냐, 도망치느냐를 고민하다가 헥토르가 다가오자 두려움에 도망침.

 

메넬라오스가 이렇게 고민한 것은 비겁한 행동이 공적인 수치심/분노를 사게 될 것임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넬레오스는 영웅으로서의 자존(aidos)을 지켜야 한다는 이상적인 자아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자신의 가치를 공동체적인 인정을 통해 확인하려는 영웅들의 일반적인 성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패배 자체가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은 아니다

 

ex)헥토르 “그[아킬레우스]의 손에 영광스럽게 죽는 편이 나에게는 훨씬 더 나을 것.” 이는 자신이 패배하더라도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eleos)과 이에 대한 공경/겸허/존중(aidos)을 통한 분노(menis)의 해소

 

-아킬레우스의 분노1 : 자신이 영웅임에도 명예(time)를 공동체적으로 무시받은 결과에 대한 분노.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똑같은 명예를 누리고 있소.”

 

→공동체적 가치기준에 호소. 그러나 막상 자신은 다음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자존심(aidos)을 위해 공동체를 배반함.

 

-아킬레우스의 분노2 :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상황에 대한 분노. 아킬레우스는 그리하여 전쟁에 다시 참가함. 이 상황은 분노1처럼 공동체적 인정으로서의 명예(time)와 관련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기에도 모종의 명예와 관련된 맥락이 있다.

 

“내게[아킬레우스]는 그런 명예(time)는 필요치 않아요. 나는 이미 제우스께서 정하신 운명에 따라 명예는 얻었다고 생각해요.” 전자의 명예는 공동체적 인정으로서의 명예다. 분노2에서는 후자의 명예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kleos(명성)으로 표현된다.

“나의 어머니 은족의 여신 테티스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상반된 죽음의 운명이 나를 죽음의 종말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소.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kleos)는 불멸할(aphthiton)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이에 따르면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있지만, 명예를 위해 참여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때의 명예는 time가 아니라 kleos이다ㅡ말하자면 역사에 기록될 고귀한 죽음ㅡ. 이와 같은 구도로 보자면 아킬레우스의 두 가지 분노는 모두 명예와 연관되어 있다.

 

-분노의 지속 : 아킬레우스의 두 번째 분노와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비통은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유린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아폴론은 이에 아킬레우스에게 aidos와 eleos(연민)을 결여한 자라고 한다. 또한 헥토르의 어머니인 헤카베도 아킬레우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그럼에도 아킬레우스는 이 탄원들을 무시하는데, 그 뒤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가 같은 말을 하자 탄원을 받아들인다.

 

-분노의 해소 :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의 탄원을 받아들인 이유는 프리아모스와 자신이 죽음과 그로 인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똑같은 인간적 조건에 놓여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는 신과 인간의 구분에 대한 공경/겸허(aidos)이며, 같은 운명의 인간에 대한 연민(eleos)과 존중(aidos)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는 인간이 겪는 보편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연민에 관한 존재론적 통찰만이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학기초에 논문 두개를 발제했는데 이 글은 정준영 씨가 쓴 『일리아스』에서 영웅적 자아의 aidos와 행위패턴   이라는 논문에 대한 요약입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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