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은 한 일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수학에서는 러셀의 패러독스로 프레게의 논리주의 기획을 끝장낸 사람이기도 하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ype theory를 집합론 내에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러셀의 업적 중에서 언어철학적인 측면을 볼 것입니다.



 예비사항 : 최소한의 논리학


 러셀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논리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논리학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논의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호들은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 it is not the case that ...

→ : if ..., then ...

∧(&) : and

∨ : or

∀ : for all(이 경우 all 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공집합이 아닌 특정 집합이 주어짐)

∃ : there exists some ...


~A : not A

A→B : if A, then B

A∧B : A and B

A∨B : A or B

∀xPx : for all x, x satisfies P

∃xPx : there exists some x such that P.

∀x(Px → ~Qx) : if any x satisfies P, then that x does not satisfy Q.


 프레게에 대한 공격 : 정말 T도 F도 가지지 않는 그런 선언적인 표현들이 있는가?


 프레게는 문장처럼 보이는 표현에서 문장의 요소의 지시체가 결여된 경우 그 표현은 참도 거짓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지시체를 결여합니다. 그러나 러셀은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가라고 프레게에게 묻습니다. 러셀은 우리가 맞딱트리는 자연언어(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체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할 경우 프레게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령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bald"라는 문장이 있다고 합시다. 러셀은 이를 논리적인 기호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x(Kx ∧ Bx ∧ ∀y((Ky ∧ By)→y=x) where K = {x | x is an present France king}, B = {x | x is bald}

(∀이 지시하는 집합이 {x| x is human}이라고 합시다)


 한글로 나타내자면, 어떤 x가 있어서 그 x는 K와 B를 만족하고(즉 두 집합의 원소) 임의의 y가 또한 K와 B를 만족한다면 그 y는 x와 같다는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가요? 쉽게 말하자면, "현재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은 "어떤 대상 x가 있어서 현재 프랑스 왕이라는 술어와 대머리라는 술어를 만족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유일하다(유일하다는 것은 임의의 대상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조건을 만족하면 그 주어진 대상이 x와 같다는 것임)"라는 문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러셀은 이 문장은 분명 진리치를 지닌다고 합니다. 분명 K를 만족하는 대상이 없습니다. 논리적인 문장에서 A∧B는 A와 B가 모두 참일 때만 참이 되는데, 이미 K를 만족하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x 안에 ∧로 묶인 문장들의 결합 전체가 거짓이 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분명 거짓이라는 진리치를 가집니다.


 프레게적인 생각은 문장을 자연언어 안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지시체가 결여된 단어에 대한 표현을 만든다면, 프레게는 표현이 없는 지시체에 대해서 뭔가를 말하는 것 같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참/거짓을 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형식화를 거치면 그런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령 위의 형식화는 없는 프랑스 왕에 대해서 뭐라고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 왕이다"와 "대머리이다"라는 술어는 서로에게 귀속되어 있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서술됩니다. 따라서 프레게적인 문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러셀은 많은 언어적 문제, 철학적 문제들이 일상언어를 잘못 분석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치 프레게가 저질렀던 오류처럼말입니다. 러셀은 그래서 논리학적 언어로 일상언어를 풀어쓰면 많은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러셀의 On denoting은 이 정도만 이해해도 상관이 없으나, 좀더 언어철학적인 부분을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장들은 어떻게 분석되는가?


 러셀은 문장을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the"에 관한 표현과 그리고 "everything/something/nothing"에 관한 표현이요. 그는 "the"가 사용된 문장들은 표현되었을 때 반드시 유일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the = uniqueness 입니다. 러셀은 유일성을 함축하는 명사를 proper name(고유명사)라고 합니다. 가령 "the present president of USA"라는 표현은 표현 안에 있는 말들이 실질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유일성을 함축합니다. 딱 이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살펴봅시다.



 1. The present king of France is bald

 2. Someone is bald

 3. Everyone is bald

 4. Nobody is bald


 1-4의 문장들은 모두 subject와 predicate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뭔가 is앞의 주어에 대해서 뒤의 표현이 뭔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문장분석을 하고 나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각각에 대응하는 논리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1'. ∃x(Kx ∧ Bx ∧ ∀y((Ky ∧ By)→y=x) (어떤 x가 있어서 K와 B를 만족하고, 임의의 y에 대해 y가 K와 B를 만족하면 y=x)

2'. ∃x Bx (B를 만족하는 대상 x가 존재함)

3'. ∀x Bx ( 모든 x가 B를 만족함)

4'. ~∃x Bx 혹은 ∀x ~Bx (B를 만족하는 대상 x가 존재하지 않음/ 모든 x에 대해서 그 x는 B를 만족하지 않음)


 우리가 일상언어에서 말하는 많은 표현들이 주술관계에서 주어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논리적 분석을 거치면 사실상 주술관계는 서로 분리되고 주어나 술어나 모두 어떤 다른 속성/술어로 환원됩니다. 프레게는 자연언어에서 "is"로 이어지는 표현들이 주어가 뭔가가 있고, 그것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분석에는 자연언어에 나타나는 주어의 이름이 사라집니다. 전술했듯이, 러셀은 많은 언어적 오류를 논리적인 언어로 환원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직접지(acquaintance)와 특정기술구(definite description)


 러셀은 위와 같은 문장들 외에 매우 곤란한 문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아래의 문장을 봅시다.


1. John is Smith.


 "John"과 "Smith"는 비록 "the"가 붙지 않지만, 분명 현실 안에서 유일하고 특정한 인물을 지시하는 명사들입니다. 따라서 둘은 proper na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은 가령 John이라는 사람이 본명 외에도 Smith라는 다른 이름을 사용할 때 가능합니다. 이 문장을 위에서 러셀이 분석한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 러셀은 여기서 난관에 봉착합니다. 왜냐면 ∃, ∀, ~, ∧, →, ∨과 같은 논리적 연결사들이나 논리식에 나타나는 여러 술어들(위에서는 K, B)로 우리가 고유명사라고 부르는 것들을 분석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러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러셀은 우리가 고유명사라고 부르는 모든 표현들이 사실은 고유명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고유명사는 그 성격을 유지한 채 논리적 수단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물론 논문에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러셀은 1의 문장을 논리적 수단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지와 특정기술구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직접지(acquaintance)는 우리가 세계에서 더 이상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차적인 지식을 뜻합니다. 러셀은 우리가 감각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우리가 명확히 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직접지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무언가를 느꼈을 때 this!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완전히 분명하고 명확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선 우리는 '존재한다'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표현조차 nonsense라고 합니다. 가령 우리가 칼에 찔려 있을 때 우리는 그 감각에 대해서 실존성을 물을 겨를도 없고, 그런 것에 대한 판단조차 들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적으로 감각하고 느낍니다. 즉 존재에 대한 의심조차 들지 않으며, 우리에게 완전히 분명한 감각들을 통해 우리가 아는 것이 직접지입니다.


 러셀은 직접지를 통해 알게 되는 대상들의 이름만이 proper name이라고 합니다. 러셀은 proper name이 될 수 있는 것은 sense data, universal, self를 표현하는 이름밖에 없다고 합니다. universal은 플라톤의 이데아개념으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가령 아름다움의 이데아라고 플라톤이 말할 때, 여기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어떤 아름다운 것들, 대상들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그것들에 숨어있는 어떤 공통적임에 대한 것입니다. 즉, universal은 순수한 개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러셀 스스로 universal이 플라톤의 이데아의 개념의 다른 말이라고 서술합니다).


 가령 삼각형이라는 개념이나 "north of"라는 개념은 universal에 해당합니다. 가령 "Edinburgh is north of London"이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north of"라는 표현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고 러셀은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위의 문장을 접했을 때, 우리는 "north of"라는 표현에 대해 어떤 것도 묻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적어도 저는) 알며, 그런 개념들에 대해서는 그냥 뭐라 하지 않고 this! 정도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north of"라는 표현은 우리 언어체계의 어떤 이름에도 대응하지 않으며, sense data와는 달리 감각되는 뭔가에 대해 지칭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universal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추상적인 순수한 개념들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따라서 위에서 제시한 B, K도 universal입니다).


 또한 "I am old"라는 표현에 등장하는 "I"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우리는 더 이상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자신에 대한 것을 잘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의심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이런 의미에서 러셀은 데카르트와 다릅니다).



 러셀은 이러한 직접지들로부터 결합되어 나타난, 우리가 고유명사라고 부르는 언어적 표현들을 모두 특정 기술구(definite description)라고 합니다. 우리는 직접지로부터 특정 기술구들을 만들고, 또한 대상에 대한 직접지를 가지지 않고도 특정 기술구들을 통해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령 소설 속에서 A라는 등장인물에 대해 묘사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우리가 직접지들로부터 얻은 기술구들로부터 그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러셀은 우리의 대부분의 지식은 특정 기술구를 통해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실질적인 사례로, "박근혜는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라는 지식을 얻는데 우리는 박근혜라는 인물을 직접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박근혜"라는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sense data와 속성들(universal)과 "18", "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universal 추상적인 개념들(이것들도 universal)들을 통해 특정 기술구들을 결합함으로써 위 문장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러셀은 1의 문장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면 이 역시 특정 기술구를 통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문장에 나타난 John이나 Smith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여러 직접지들이 합쳐진 특정 기술구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John은 우리가 현실의 대상에 그를 경험했을 때 가지게 되는 여러 직접지들을 묶어놓은 것입니다. 즉, John은 그가 만족하는 여러 개념들과 sense data의 집합, 특정 기술구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John-like property라고 한다면 1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환원됩니다.


2. ∃x(Jx ∧ Sx ∧ ∀y((Jy ∧ Sy)→y=x) where J = {x|x satisfies John-like property}, S={x|x satisfies Smith-like properties}


 즉, John스러운 술어들과 Smith스러운 술어들을 만족하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러셀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는 고유명사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모두 개념적으로 해체하고, 특정 기술구로 대체합니다.




※ universal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구하고 싶으신 분은 http://www.ditext.com/russell/rus9.html 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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