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분석철학의 기반은 언어철학, 논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있습니다. 언어철학을 전개하는데 있어 비전공자들이 가져야 할 예비사항에 대해서 이번 시간에는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용과 언급(use and mention)


 어떤 발화를 할 때는 발화되는 언어적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도, 혹은 그 표현 자체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철학적으로 표현이 '사용'된다고 하고, 후자의 경우 표현이 '언급'된다고 합니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언급할 때는 따옴표를 사용합니다. 사용과 언급은 직접 사례를 들어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의 표현들을 살펴봅시다.


 1.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다.

 2.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다.

 3. 순수이성비판은 한글로 쓰였다.

 4. "순수이성비판"은 한글로 쓰였다

 5. "유루유리"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다.

 6. 1+1=2 는 참이다.

 7. "1+1=2"는 참이다.

 8. "1+1=2"는 분석적이다. 

 9. 1+1=2는 분석적이다.

 10. 1은 숫자이다.

 11. "1"은 아라비아 숫자이다.


 1의 경우 "박근혜"라는 표현은 언어가 표현하는 대상을 직접 지시하고 있습니다. 즉, 현실의 박근혜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의 경우 나타난 ""박근혜""라는 표현은 사람이 아닌 따옴표 안에 있는 글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고, 이 경우 비문이 됩니다. 3의 경우에 "순수이성비판"이라는 표현은 칸트가 독일어로 쓴 철학책을 직접 말로써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글로 쓰였다"가 아니라 "독일어로 쓰였다"라고 해주어야 맞습니다. 4는 따옴표 안의 말이 한글로 쓰였기 때문에 맞는 문장입니다. 비슷한 논지로 5도 비문입니다. 유루유리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유루유리"는 한글자모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철학적으로 좀더 중요한 포인트는 다음부터입니다. 6의 경우 실제로 수학적인 명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1+1=2"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7은 비문입니다. 7의 ""1+1=2""은 글자로 이루어진 표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수학적 명제를 표현하지 않으므로 문장에 불과하며, 7은 비문입니다.

 8의 경우 칸트의 분석명제/종합명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칸트의 분석명제는 주어 안에 술어가 포함되는 '표현'입니다. 8은 문장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므로 이는 문법적으로 타당한 문장입니다. 물론 칸트에 있어 수학적 문장들은 종합적이므로(즉,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지 않음) 이는 진리치에 있어 F를 배당받습니다. 9에 나타난 "1+1=2"라는 표현은 수학적 명제를 직접 사용하고 있으므로 비문입니다. 수학적 명제는 추상적인 것으로 어떤 문법구조를 지니지 않습니다.

 10도 비문입니다. 10에 나타난 "1"이란 표현은 숫자가 아니라 수학적 대상에 다루고 있습니다. 수는 추상적인 대상인 반면에, 숫자는 수를 표현하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1"은 숫자이다."나 "1은 수이다."라고 문장을 고치는 것이 문법적으로 타당합니다. 11은 문법적으로 옳습니다.


 혹시 사용과 언급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셨다면, 제가 위의 문단들에서 왜 따옴표를 어떤 것에는 하나를 쓰고, 어떤 것에는 두 개를 썼는지를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튼 정리하자면, 사용은 표현에서 사용되는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며, 언급은 표현하는 바로 그 표현과 언어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입니다.



명제, 문장, 진술(proposition, sentence, statement)


 철학적으로 문장이란 'sentence is declarative grammatically right expression whose thought is true or false'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장이란 무언가에 대해 선언적으로 말하는 문법적으로 옳은 표현이자 참 혹은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생각의 담지자입니다. 즉 "음식"는 사전에 있고 문법적으로 하자가 없지만, 어떤 생각을 표현하지도 않고 참이나 거짓을 말할 수도 없기에 문장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표현은 문법적으로 타당하며 이 문장이 사용되었을 때 직접적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철학적으로는 문장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윤리학적인 표현들은 참이나 거짓을 담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우선 논리학적 전통 하에서는 그렇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서술합니다). 비슷한 식으로 기호나 취향과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담는 표현들은 문장이 되지 못합니다. 문장으로 나열될 수 있는 표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오바마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2. 1+1=2

3. 일차논리에서 참인 문장들은 모두 증명가능한 문장들이다.


1-3은 모두 문법적으로 타당한 표현입니다(2의 경우 수학적 문법). 또한 표현의 내용들이 주관적인 판단이나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 참/거짓이 나뉘기 않고 참/거짓이 객관적으로 나뉘기 때문에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장들은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철학에서는 문장이 표현하는 어떤 생각을 명제(proposition)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의 머리에 있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들의 결합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문장은 명제를 표현하며, 명제는 문장을 통해 파악됩니다. 명제는 어떤 주관적인 판단이나 취향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어떤 추상성을 지닙니다(그것이 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철학자들은 이런 전통에서 명제를 이해합니다).


 문장과 명제의 관계에서, 다른 문장들은 같은 명제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4. It rains.

5. 눈이 내린다.

6. 雪が降る。


 4-6은 모두 다른 언어에서 쓰였고 다른 문장이지만, 그것들이 표현하는 바, 문장이 담고 있는 그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4-6는 같은 명제를 표현합니다. 다른 문장들을 봅시다.


7. 나는 한국인이다


 이 문장은 발화자에 따라 옳은 문장일 수도, 틀린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발화자에 따라 다른 명제를 표현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철학에서는 '진술(statement)'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문장을 state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문장이 다른 명제를 표현하게 됩니다. 가령 제가 7을 발화했을 경우, 특정 시공간에 대한민국 국적을 지닌 저라는 인물이 말하는 진술하는 문장이고, 이 경우 참인 문장이 됩니다. 만약 제가 아닌 다른 한국인이 이 문장을 진술했다면 이 역시 참인 문장이지만, 서로 표현하는 내용은 다를 것이고 따라서 다른 명제를 표현하게 됩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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