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비트겐슈타인 스스로가 비판한 전기 사상의 오류를 살펴보고, 후기 이론으로 넘어가는 막간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전기 사상의 오류 : 요소명제는 찾아질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와 언어는 1-1 대응관계에 있으며, 서로는 서로의 거울이며 언어는 세계를 모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언어적 수단은 원자사실의 거울에 해당하는 요소명제를 통해서입니다. 요소명제는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세계의) 대상들의 그림인 이름과 이름의 단순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더 이상 분석이 불가능한 문장입니다. 요소명제는 원자사실에 대응하고, 복합명제는 요소명제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이 사실 위에 세워진 이론이 진리함수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스스로 요소명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모든 문장은 어떻게든 다른 요소로 분해되며, 가장 단순한 문장이더라도 그 문장이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방도가 실질적으로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전기 사상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습니다.


전기사상의 오류 : 언어와 세계는 1-1대응하는가?

모사설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세계는 1-1 대응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는 <<논고>>를 통해 showing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언어생활을 보니 반드시 한 단어가 하나의 대상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상황에 하나의 언어가 하나의 동일한 실재를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수학이나 논리학적인 언어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는 하나의 언어적 표현이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는 아무 대상도 지시하지 않고,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신은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종교인의 '신'과, "손님은 신이다"라고 말하는 손님의 '신'은 서로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같은 대상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또한 가게에서 '빨간 사과 두 개'를 인지할 때 '사과'라는 언어는 실제 사과를, '빨간'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색채를 지시합니다. 그러나 '두 개'는 무엇을 지시합니까?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 이 언어는 사과가게에서 직접적인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지시한다면 그에 대한 1-1인지를 할 수 있을 텐데, 추상명사인 '둘'이라는 것은 직접적인 현실에서 대응되는 성격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1-1대응이 일어난다면 애매모호한 단어가 없어야 합니다. 세계는 확정적인 것으로서 언어에 확정적으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목'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며, '빨강'은 어느 색채에서 어느 색채까지인지를 확정지을 수가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위와 같은 이유들로 관념론적이고 선험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전기 사상을 버리고 경험적이고 반본질주의적인 언어이론으로 넘어갑니다. 그 이론이 이른바 '용도의미론(the use theory of meaning)'이며, 이 이론은 '언어는 사용에 의해 규정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용도의미론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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