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까지 비트겐슈타인 전기 사상의 이론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기 사상의 영향, 특히 논리실증주의, 통합과학주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합시다.


언어그림이론의 영향

언어그림이론은 러셀과 이상언어학파들에 의해서 왜곡되어서 논리실증주의의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러셀이 <<논고>>를 영문판으로 번역하고 서문을 써서 비트겐슈타인에게 보냈는데, 비트겐슈타인은 "러셀, 당신이 저를 매우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 외에도 이상언어학파,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했었는데, 비트겐슈타인의 안색이 변했다고도 전합니다.

그들은 비트겐슈타인을 어떻게 오해했을까요?


비트겐슈타인과 논리실증주의

이상언어학파, 특히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이 meaningless와 nonsense를 구분했던 것을 모두 meaningless로 분류해버립니다.

즉,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신비로운, 따라서 보여질 수밖에 없던 종교, 형이상학, 윤리학, 예술 등 삶에서 중요한 부분들이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세계 내에 존재하는 것들이고, 다시 말해서 요소명제와, 분석명제와 종합명제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세계 외부의 것들, 신비한 것들은 이들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즉, 다시 말해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수학/논리학, 과학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형이상학, 종교 등은 세계 밖에 있기 때문에 미신이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가 <<논고>>에서 그것을 발견했다고 했기에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의 스승이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설명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오해가 가능했던 건 <<논고>>의 비유적인 측면과 난해함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에나 후기에나 완전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고, 그로 인해 항상 오해를 불렀습니다.

실제로 <<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끝냄으로써 논리실증주의자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긴 것이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하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요.

이렇게 비트겐슈타인을 오해한 이상언어학파,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을 오해한 것을 바탕으로 통합과학주의를 이끌어 냅니다.

통합과학주의 혹은 통일과학운동은 모든 학문이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환원의 방향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인문학->사회과학->심리학->생물학->물리학

이런 도식으로 모든 학문은 물리학으로 귀결된다고 합니다.

 

인문학은 사회과학으로 환원될 수 있고, 사회과학은 인간정신활동이므로 결국 심리학으로 환원된다고 합니다. 심리학은 생물학적 요소이니 결국 심리학은 생물학으로 환원되고, 생물학은 물리적인 현상, 물리적인 법칙 하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물학은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정신과학(인간에 관한 학문)은 모두 자연과학으로 귀속되고, 자연과학은 결국 모두 물리법칙과 현상으로 환원됩니다.

 

 다시 말해서 의미가 있는 것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뿐입니다. 모든 학문 더 나아가 모든 현상은 물리적 개념으로 환원될 수 있고, 모든 것은 물리적인 인과법칙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서도 나타나지만 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도록 합시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비트겐슈타인의 진리함수론의 개념에서부터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명제로 환원됩니다. 명제는 요소명제들의 진리함수이고 결합입니다. 분석명제에 관한 한 논리학자/수학자들이 해결할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영역인 종합명제는 과학자들이 요소명제를 판별함으로 명제의 진리치가 정해집니다. 따라서 세계에 관한 한(다시 말해 말할 수 있는 영역에 관한 한) 과학자들의 위치와 업무는 다른 어떠한 것보다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 세계는 명제들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진리함수론에서 이러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이 세계 내의 것들보다도 세계 밖의,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했던 것과는 반대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그러한 것들은 말할 수 없고 따라서 의미가 없는 것이다고 여겼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신비로운 것과 무의미한 것이 비트겐슈타인에게 구분되는 것에 반해,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그러한 구분이 없습니다. 모두 무의미(meaningless)한 것이죠.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진리함수론을 바탕으로 '의미'의 기준을 산출합니다. 즉, 수학/논리학적인 것, 과학적인 것을 기준으로 의미의 기준을 정합니다. 수학/논리학, 과학적인 것(즉, 명제)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수학적이지도 논리학적이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즉, 신비로운 것).

(수학/논리학을 제외한 영역에서 과학/비과학을 나누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명확한 기준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이라는 영역에서 형이상학과 윤리학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형이상학과 윤리학은 명제가 아니라 세계 밖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과학을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설정함으로 인해서 비과학적인 것들은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무의미하게 됩니다. 형이상학, 윤리학뿐만 아니라 여타 인문사회적인 학문들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논리실증주의는 사실 현대인의 삶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가치기준을 과학/비과학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죠. 과학적인 주장만이 의미가 있고, 비과학적인 주장들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바로 그러한 것이죠. 삶의 영역에서 과학이 아닌 여타 모든 것들, 종교, 전통적인 관습, 전통문화, 더 나아가 인문~사회과학 등을 제거하려는 생각이 논리실증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 전통에는 데카르트의 주관주의 형이상학, 밀의 학문 일원론이 있긴 하지만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비트겐슈타인에서 조금 벗어나서 그가 영향을 준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연관된 것들을 자세히 다루고자 합니다.

 

과학만능주의의 사상적인 흐름(데카르트~밀~논리실증주의~기계론적 사고관)을 살펴보고자 하고, 과학철학적인 측면에서 논리실증주의(검증의 원리)와 반증주의를 다루고자 합니다. 이후에는 비트겐슈타인 전기 사상의 오류와 비트겐슈타인이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부분을 조금씩 다루겠습니다.

 

 

Posted by 괴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