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조작된 것

단상 2015. 7. 29. 16:29

 

 

 적지 않게 언어 자체가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내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흔히 관념론이나 합리론 그런 쪽으로 논의가 흐르는데, 개인적인 입장으로 본다면 나는 '언어는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을 따르고 있다. 본인의 상대주의에 대한 옹호에서 그런 성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언어는 일상세계에서 직접 보고 듣는 '체험'의 표현이다. 즉, 언어 자체가 독립적으로 미리 존재하여 우리는 그 뒤에 언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흰 도화지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존재가 경험과 인식을 통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게 '진리'라든가 유일한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과거에 직접 가서 언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과거의 세계와 현재의 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본다면ㅡ과거를 탐구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대개 그들이 '인간'이라는 큰 타이틀 하에서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옳은지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려우나, 고대에도 같은 물리법칙이 작용했을 것이고, 고대에도 사람은 인간이 지닐만한 물리적인 특성을 지녔다는 것을 믿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에 일관성을 불러오기 때문에 우선은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ㅡ, 언어란 미리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라는 쪽이 좀더 일관적이게 보인다.

 

 언어가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매우 개연적이라고 생각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일상세계의 문장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나 오늘 저녁 스파게티 먹고 싶어"라는 문장에서, 언어가 조작된 것이라면(즉, 언어란 모두 인간이 만든 세계에 대한 표현이라면), 위 문장이 얼마나 어려운 문장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저런 문장에 아무 거부감이 없지만, 사실 '나(개별자로서 1인칭)'라는 대상과 '오늘' '저녁' '스파게티' '먹다' '싶다(기호)'라는 대상이 얼마나 독립적인 대상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각각의 단어가 지시하는 대상은 모두 다르며, extension[각주:1]과 connotation[각주:2]도 모두 다름을 알 수 있다. 단언하여 말한다면 위 단어들은 집합에 있어서 매우 상이하다고 볼 수 있다. 상이한 대상들을 그저 나열함에도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매우 간단한 이야기다. 현실의 체험에서 우리가 저 단어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도록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이런 결과들로부터 각각의 단어들 사이에 어떠한 강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어들 자체에는 그저 개념에 대한 정의밖에 없다. 그 외에 우리가 연관짓는 것들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 그렇게 뇌를 훈련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들에 대해서 동일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학문적인 언어는 어떤가? 특히 철학적인 언어는? 대개 학자들의 경우 어떤 단어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이해와 정의를 내리는데, 미리 그렇게 존재해서 철학자가 발견한 것인가? 아니다. 그저 그러한 언어가 현실에서 사용되는 '맥락'만이 있을 뿐이다. 언어 자체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가 어떤 독립적이고 상황-맥락과 독립적인 절대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가령 자신의 언어가 어떤 객관적인 실체를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언어사용을 무시하곤 한다. 가령 철학에서 '관념'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관념이라는 단어가 태초부터 미리 개념적으로 존재했고, 우리는 그것을 뒤에서 파악할 뿐인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관념'이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여러 다른 이해를 불러오며 사용되던 것을, '내가 보기엔 관념이라는 것은 이렇다'라고 해버린 것인가?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관념이란 단어가 대중에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언어적 상황뿐이다.

 

 철학자들이나 단어를 정의해버리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오류를 범하곤 한다. 단어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 수학의 대상도 그렇다. '수'라는 것은 실존하는가? 아니, '수'라는 것은 플라톤주의적으로 미리 독립되어 존재하는 대상이고, 우리는 그것을 파악할 뿐인가? 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언어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이성능력 속에서 수학이라는 거대한 논리적 언어사용 속에서 수가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수란 우리가 미리 수를 머리에서 정의하고 이해하기 전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수학자집단이 수를 사용하면서부터 그 논리적인 언어사용 속에서 등장했을 뿐이다.

 

 그 외에도 아무 책이나 찾아보면 단어정의를 내리는 경우를 보기가 쉽다. 마치 그것이 (세계가 탄생하기 전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미리 있는 것처럼. '단상'의 카테고리에 있기 때문에 더욱 논지를 진행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언어실황을 찾아보면 언어 자체에 큰 힘을 부여하는 것을 보기가 쉬울 것이다. 그것이 마치 인간과 맥락을 떠나 독립적인 어떠한 존재인 것처럼(가령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대개 그 답변이 미리 민주주의가 있어서 계시를 받아 답을 해준 것처럼 느끼기가 쉽다. 민주주의가 뭔가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해 골똘히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란.."이라든가 "민주주의란 뭘까"같은 형이상학적인 물음보다는 '민주주의'가 사용되는 언어실황을 보아야 한다).

 

 

 

  1. (외연, 개념이 적용되는 대상들의 집합 ex) 자연수의 외연= {1,2,3,4, ...}) [본문으로]
  2. (내포, 개념이 지니는 공통적인 성질들. ex) 자연수의 내포 = 0에 Successor function을 유한히 적용하여 얻어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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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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