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단상 2015. 8. 5. 00:24


내가 아주 큰 영향을 받은 입장이 비트겐슈타인 후기 이론이다. 완전 잊고 있었는데, 이 부분을 다시 연재해야겠다. 철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입장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허무맹랑한 뚱딴지 같은 말이다. 대개 이런 류의 질문은 관념론을 전제하기가 쉽고, 나오는 결론도 이데올로기적이게 될 것이다. 관념론자가 아니라면 질문이 둥둥 떠다니는 언어상황부터 분석해야한다.

개인적으로 텍스트 바깥, 언어 바깥, 감각 밖은 모두 형이상학의 믿음을 전제한다고 본다. 결국 명확히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작동성/효과성'에 따라 밖의 무언가를 전제하게 된다. 물리법칙이나 논리법칙이 대개 그렇다. 있는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은 것들. 인과율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흄의 주장처럼 선후사건만 존재하고 효과에 따라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살아갈 뿐이다. 과학이 내일 모레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그냥 그렇게 믿을 뿐이다. 효과가 있어보이고,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유교적 방식에 따라 나는 이런 효과성/작동성을 철학이나 이데올로기, 종교에도 적용하고 싶다. 종교나 철학 학문, 이데올로기는 참인가? 그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왜 그렇게 믿는가.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리법칙처럼 모든 대상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개개인으로 범위를 좁히면 누구나 작동가능성을 기준으로 뭔가를 택하고 판단한다.

내 삶에서 작동가능하다고 여겨지면, 그게 다다. 돈이든 종교든 음식이든 이데올로기든 학문이든. '진리'에 대한 물음은 그러므로 없어져야 할 대상이고, 다만 "진린지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나한테 맞으면 되는거아니우?"하는 식이 되어야한다. 어떤 식으로든 진리라는 이름은 타인에게 폭력을 낳는다. 그리고 진리가 실재한다면, 그것 또한 작동하지 않겠는가?

(자간설명 : 비트겐슈타인의 맥락에서 진리란 무엇인가의 질문이 질문 자체가 아닌 언어적 상황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그 질문 자체에 절대적 대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진리가 해체되고, 스스로에게 가장 확신이 가는 작동가능성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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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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