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년, 11자녀 중 넷째로 출생
-13세에 어머니 사망
-1740년, 17살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 6년동안 공부
-1747~1754년 가정교사(일종의 과외)로 생계유지
-1755년, 31살에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돌아옴.
-1755년, 일반논문과 학위논문 교수자격논문을 제출
-1756년, 32살에 논리학, 형이상학 자리가 공석이 되어 원외교수에 지원. 탈락.
-1758년, 34살에 교수직 지원. 탈락.
-1764년, 40살에 프로이센 당국에서 문학부 교수직을 제의했지만 거절(자기 분야가 아니므로)
-1756년~1770년, 32살부터 46살까지 사(私)강사ㅡ오늘날의 시간강사급ㅡ로 지냄.
                          그래도 생계유지가 어려워 왕립도서관 사서로 투잡

-1770년, 46살에 드디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논리학 형이상학 정교수로 임용
-1781년, 57살에 기념비적인 저서 '순수이성비판'을 출간. 하지만 학계에서 매장당할 정도로 비난을 받음
-1788년, 64살에 '실천이성비판'을 출간
-1790년, 66살에 '판단력비판'을 출간
-1793년, 69살에 '순전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출간
-1796년, 72세에 교수직 사임(1756~1796기간동안 강의했으니 40년강의)
-1797년, 73살에 '윤리형이상학' 출간
-1799년, 75세에 건강이 심하게 악화됨.
-1804년, 79세의 나이로 하인에게 포도주 한잔을 청하고 '좋군!(es ist gut)'이라 하고 생을 마감.
-강단에서 논리학 형이상학 물리학 수학 지리학 교육학 신학 윤리학 자연법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학문을 공부하고 강의함.
-평생 독신
-죽을때까지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음.

 

 주목할만한 건, 밥벌이가 안되서 졸업후에 7년동안이나 과외를 했다는 것. 그리고 32살부터 무려 46세까지 14년동안이나 시간강사를 뜀. 300년전에도 교수되기는 힘들었나보다. 그리고 시간강사로 생활비가 안되서 도서관 사서로 투잡을 뛰었다는 건 너무나 큰 쇼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정규직은 살기 힘들었나보군.. 그리고 무려 10년동안이나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기념비적인 비서 '순수이성비판'을 써내었다는 것. 그리고 무려 73세까지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72세까지 강단에 섰다는 것. 대단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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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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