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논리(formal logic)에서는 명제(proposition)을 참/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선언적인 문장이라고 정의한다.

(proposition is a declarative sentence that is true or false)

 

형식논리의 진리표에 따르면 p→q의 진리표(truth table)은 다음과 같다.

 

 

 p 

 q 

 p→q 

 T 

 T

 T 

 T 

 F 

 F 

 F 

 T 

 T 

 F 

 F 

 T 

 

 

모든 경우를 살펴보자.

 

1 if p is true and q is true, then p→q is true

 

p→q의 참거짓을 가릴 때, p가 참이고 q도 참이면 p에서 연역적으로 q가 도출된다는 의미이니 p→q는 참이다.

 

 

2. if p is true and q is false, then p→q is false

 

p→q의 T(true)/F(false)를 따질 때, p가 참인데 q가 거짓이면 p→q는 반드시 거짓이 된다. 논리식으로는 (p∧~q).

 

쉽게 설명하면, '친구가 생기면(p) 밥을 먹을 것이다(q)'라는 명제가 있다. 친구가 생겼는데(p), 밥을 먹지 않으면(~q) 원래 문장은 거짓이 된다. 같은 논리구도다.

 

 

문제가 되는 건 3과 4다.

 

논리학적으로는 전제가 거짓이면 결론이 항상 참인데(혹은 전제가 공집합일 때), 이를 vacuous truth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

 

'p→q에서 ~p라면 p를 논하고 있는 p→q에 대해서, 우리는 p→q가 거짓임을 밝힐 수단이 없다. 거짓임을 밝힐 수단이 없다는 것은 결국 T를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p이면 p→q는 항상 참이다'

 

사례를 들어서 보자. '친구가 생기면 밥을 먹을 것이다'. 이 명제에서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본 명제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거짓임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참이다.

 

 

다른 논거는 다음과 같다(일반적인).

 

'친구가 생기면 밥을 먹을 것이다' +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면, 밥을 먹든 안먹든 상관이 없다. 밥을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제(친구가 생긴다)가 거짓이면 결론은 어떻든 상관이 없어 참이 된다.

 

 

 

 

이에 대한 나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형식논리학에서는 명제 p에 대해서 반드시 T/F가 결정되어야 한다. T 이거나 F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p→q에서 ~p이면 사실상 p→q에 대해서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p→q의 진리값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제가 거짓이면 결론은 '상관이 없다'는 말을 true값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p→q에 대해서 결정할 특정 권한이 없다. p→q에 대한 단서가 논리적으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건 ~p라는 사실뿐이다. ~p와 p→q를 연관지을 건덕지는 안 보인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p가 F값일 경우 p→q는 '결정불가능'하다.

 

 

 

비슷한 논리로는 앞에서 '~p이면 p→q가 거짓임을 밝힐 수단이 없다. 따라서 p→q는 참이다'를 이용하면 된다.

 

금방과 같은 논리라면, '~p이면 p→q가 참임을 밝힐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따라서 p→q는 거짓이다'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p일 경우 p→q의 진리값은 결정불가능하다. 결정불가능하다는 말은 참/거짓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형식논리는 T/F(배중률)을 절대진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형식논리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p이면 p→q가 참이 됨을 전제해야하지만, 학문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엄밀하게 비판적으로 보자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브라우어가 제창한 직관주의 수학(intuitionistic mathematics)도 같은 주장이고, 나 역시 모든 명제가 T/F로만 결정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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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1 덧붙임)

 

명제논리는 기본적으로 T/F를 이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합론과 수학이 쌓여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T/F의 실재론을 바탕으로 형성된 수학을 바꾸려면 심각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직관주의 수학에서 드러나는 양상이기도 하다.

 

현재의 수학이 T/F를 전제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무작정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역시 하나의 틀을 가지고 세계를 해석한 것이고,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혹은 이것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의 필요성이 강화된다면 T/F 식의 논리를 확장시켜서 다치논리(many valued logic)나 직관주의적 수학을 건설하면 된다.

 

현재의 수학계에서 브라우어의 직관주의는 비주류인데, 이는 아직까지 T/F식의 수학이 상당히 우리에게 유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에 언젠가 T/F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기존의 수학과 다른 수학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

 

완전한 절대적인 논리체계가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면, 하나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또 다른 논리체계를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글을 썼을 때 나는 형식논리를 비난조로 공격했던 것 같다. 무의미한 비판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형식논리도 그 나름대로의 체계가 있고 세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기준인 것 같다.

 

 

(2015.2.14 덧붙임)

 

댓글 달아주신 러셀님의 조언으로 제가 잘못 이해했던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 글은 흑역사로 남을 것 같네요. 수정은 했지만서도 글 자체는 기념으로 남겨둡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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