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했다는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칸트 스스로가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글부터는 그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칸트의 계획 : 합리론과 경험론, 무엇이 문제인가?

 

 

저번 시간에 잠시 다루었듯이, 합리론과 경험론은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합리론의 큰 문제는 사유실체와 연장실체의 이원론, 기계론적 사고관이었습니다.

 

경험론은 결합관념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칸트는 이 두 이론들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즉, 모순관계에 있어 보이는 두 인식론을 묶으려고 한 것이지요.

 

칸트는 감성(sensibility)→구상력(imagination)→오성(understanding)→이성(reason), 즉 4가지 과정을 통해서 이를 나타냅니다.

 

 

 

인식의 기초 : 감성(感性, sensibility)

 

 

우선, 인식론적으로 감성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너 참 감성적이다"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식론적 언어에서는 감성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감성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파토스적 감성(pathos-like sensibility)과 인식론적 감성(epistemological sensibility)으로요.

 

전자는 일상에서 쓰이는 감정상태 등을 뜻하구요, 후자는 인식주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의 사물들을 체내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뜻합니다. 앞으로 다룰 감성은 전적으로 후자에 국한되어 있으니, 이해하실 때 혼동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감성의 형식 : 시간과 공간

 

 

칸트는 감성을 크게 형식과 내용으로 분류합니다. 감성의 형식과 감성의 내용이지요.

 

철학에서 형식(frame)이란 어떤 체계 내에서, 체계에 들어있는 모든 내용을 제외했을 때 남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금물이 들어 있는 컵(체계)에서 물(내용)을 모두 버리면 컵(형식)만 남습니다. 이 때, 아무 내용물이 없이 남는 건 컵밖에 없으니, 컵이 형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형식이라는 건 대충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칸트에 따르면, 감성의 영역에서 모든 내용을 지워버리면 '시간과 공간' 이라는 형식만 남게 된다고 합니다.

 

시간은 '내감(內感)의 형식', 공간은 '외감(外感)의 형식'을 의미하고, 시공간을 합쳐서 감성적 직관의 순수형식이라고 합니다.

 

풀이하자면, '내감'이란 내부 상태를 인지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칸트는 인간이 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내부 상태의 변화를 알아차린다고 합니다. 이는 시간이 외부세계에 절대화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외감이란 '(신체)외부 대상을 감지하는 능력'입니다. 공간이라는 내부 형식에 의해서 외부세계를 조직하여 감각하게 됩니다.

 

이 감성적 직관의 순수형식은 사물 그 자체(물자체)를 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자체에게 의식주체에게 내재된 직관형식을 투영하여 감지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물자체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물자체에게 시공간이라는 형식을 투영하여, 물자체를 재구성하여 세계를 '우리 식'대로 인식하는 겁니다.

 

가령, 인간과 물고기를 같은 대상을 보고 같게 감지할까요? 아니죠. 물고기는 물고기 나름대로 자신의 직관형식으로 세계를 재구성하여 세상을 인지합니다. 직관의 형식이 다르다면, 생명체마다 물자체에 다른 형식을 적용하여 세상을 다르게 감각할 겁니다. 즉, 물자체는 인식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인식하는 시공간 형식이 다르기 때문이죠.

 

 

 

우리가 대상을 감각할 때, 우리는 그 대상에 우리의 직관을 부여합니다. 이렇게 감각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들을 감성의 내용(혹은 재료)라고 부릅니다. 칸트 식으로는 '순수 직관의 다양' 줄여서 '직관의 다양'이라고 부릅니다. 내용에 다양이 붙은 이유는, 우리는 한 가지만 감각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칸트에게 감성의 상태는 아직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그저 시공간의 형식과 감각기관이 자동으로 발동한 단계에 불과합니다. 설명하자면, 우리는 길을 지나면서 뭔가 보고 느끼려고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무언가를 보게 되고 듣게 되고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무언갈 하는 상태는 아니죠. 그냥 감각기관이 자동적으로 발동한 것에 불과합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물자체 중 직관의 다양이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서 시공간의 형식을 투영합니다. 칸트는 이렇게 시공간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세계를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글에서는 구상력(imagination)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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