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성 ppt 작성을 위한 내용 초안
*다음주 발표인데 내용초안입니다 그냥 올려봅니다

1. 보부아르는 유아기 때부터 남성에게는 밖에서 뛰어 놀 권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권리, 억압받지 않고 자신을 실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아에게는 그것이 금지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아에게 주체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형을 줌으로써 통제된다고 말한다.

2. 청소년기ㅡ젊은 처녀ㅡ에는 이것이 더욱 발전되고 남성들은 자기실현을 하는 데에 비하여 여성은 그럴 수 없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래에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연인, 사랑, 결혼 등으로 미루게 되고 이것을 막연히 상상하게 된다

3-1. 여성이 처녀성을 잃게 될 때 아주 많은 경우 여성은 현실을 깨닫게 된다. 주입받아왔던,  자기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남성에 의한 성적 경험은 난폭하고 상대방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남성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욕망을 실현한다. 그는 성적 행위에 있어서 주체이며, 막 처녀를 잃게 되는 여성은 신체구조상, 또한 수치심과 공포 등의 심리적 원인으로 인하여 주체가 아닌 타자, 수동성에 있게 된다. 가령 성관계는 여성의 동의없이도 가능하지만 남성의 동의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많은 경우 배려받지 못한 여성은 환상과 상상이 깨짐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첫경험은 남성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존재성을 사랑, 연애, 미래의 가정에 두도록 되었고 첫경험은 이것들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여성은 수동적으로 만들어져왔고 남성의 난폭함과 미숙함 속에서 두려움과 배려심, 공포로 저항하기 어렵다. 여성은 자기표현의 대상이 아니기 떄문에 최초의 관계는 여성을 극단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보부아르는 실패한 경험이 자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3-2. 첫경험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여성은 인생의 중요한 지점에서 주체가 아니고, 또한 남성의 욕망에 대해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여성은 삶의 현장에서 제2의성으로서 존재한다. 이것은 결혼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4. 결혼을 통해 여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확한 현실, 부조리한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어린 시절 막연히 기대했던, 상상하도록 주입받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여성은 그 전과의 삶과는 매우 단절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 전에는 여성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지고 들판을 나갈 수도, 원하는 곳에 갈 수도 있었다. 매우 희박하긴 하여도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인 모든 권리를 박탈한다. 보부아르가 사례로 드는 결혼은 대개 중매결혼인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이것에 초점을 맞춘다. 왜냐면 여성은 아버지의 손에서 다른 남성, 다른 권위로 이행되기 때문이다. 즉 남성에 의해 그녀는 팔려간다. 그녀는 일종의 물건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물론 보부아르는 이런 경우 외에 일반적인 결혼형태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녀가 분석하는 결혼이란 여성을 권위에서 다른 권위로 보내는 것, 이 소유에서 저 소유로 보내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결혼 후의 살을 보면 매우 명확해진다. 여성은 전에는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으나 이제는 집안의 네 벽 사이가 그녀의 세계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그녀에게 부여된 일들을 한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온갖 가사일을 맡는다. 만약 여성이 이것을 자신의 의지와 자유에 의해서 했다면 그것은 비극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부아르가 모델로 삼았던 이야기는 여성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을 때이다. 그녀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여성에게 그것은 인정되지 않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이 그 권리를 얻으려면 여성은 모든 남성으로부터 복종을 요구받고 불합리와 싸워야한다. 그녀는 세계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 또한 거부되지만 여성은 자신의 생존을 남성에게 의존해야했다. 그녀는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성에게 있어서 결혼은 일종의 자기성취이고 생존 위에 부과된 하나의 욕망일 수 있으나 여성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그녀는 남성이 가진 주체성을 제거받았고 생존을 위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과도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운명에 체념하여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마치 이것은 일종의 계약과도 같다. 여성은 남성에게 성을 제공하고 남성은 주거를 제공하는. 또한 그녀는 네 벽에 갇혀산다. 이것이 무서운 점은 다음과 같다.  남성은 가정 밖에서 자신의 취미, 일,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자신의 행위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 여성은 가사를 하지만 그것은 헛되고 무의미하다. 그것은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아무리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해도 그것은 새로운 어떤 것도 만들지 않는다. 매일 같은 반복과 무기력함이 그녀를 지배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시시푸스의 비극과도 같다. 그녀는 매일매일 사라질 일을 계속 지속해야만 한다. 그녀의 시간은 세계와 단절되어있고 결혼 이후로 여성의 시간은 멈추게 된다. 결혼 속에서  자신이 상상하도록 주입받아온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닫고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자신을 죽이며 살아간다.

 5. 이 비극은 어머니에게서 완결된다. 어머니는 꺾인 마음 속에서 가사와 양육이라는 임무를 맞게 된다. 아들을 낳을 경우 여성은 자신에게 삭제된 주체성, 기형적인 결혼구조에 대한 보상으로 아들이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성공을 자신에게 속하기 위해 아들을 자기에게 순종적으로 기르려고 한다. 아들이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 품을 벗어나야한다. 그녀는 모순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녀에게 있어서도 아들에게 있어서도 비극이다. 적지 않은 경우 아들은 기형적인 존재가 되거나 반항적이 되어 비뚤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개 남아들은 주체성을 표출하도록 사회가 강제하기 때문에 이 문제들은 다소간 해결될 수도 있다. 이와 달리 여아의 경우는 문제가 크다. 여아는 남아보다 더 어머니에 속하고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여아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남편으로 대표되는 부조리함을 아이에게 투영하여 구박할 수도 있고, 자기자신을 발견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아가 커가면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면 어머니는 부조리와 세월로 인해 잃어버린 자신을 비교하며 그 소녀에게 질투하며 구타나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결혼할 즈음에는 남편보다 더 여아에게 결혼을 강요할 수도 있다. 왜냐면 여자의 인생은 남성 위에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보호될 수 없고 생존마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6-1. 심리적인 관점에서 이 현상들은 매우 흥미롭고도 비극적인 현상을 만들어낸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험들로부터 판단과 행동을 이어가는데 그 절대적인 수치가 여성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좁은 집만이 그녀의 모든 세계다. 그녀는 남성처럼 배울 수도 없고, 사상, 정치, 학문을 배울 수도 없다. 그녀는 어릴적 부모에게 배운 것들, 그리고 남편에게서 알 수 있는 지식, 사교모임에서 알 수 있는 지식만이 그녀의 것이다. 세계를 접하지 못한 어린이는 막연한 상상에 의해 세계를 구성하고 거기로부터 불안함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어린이는 순수하다. 세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 인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이 바로 이와 같다. 여성은 막연한 정보에 의해 세상을 판단하고 신비로운/마술적인 생각을 한다. 또한 여성들은 세계를 사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에 깊게 파묻혀있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 이것을 여성의 특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남성사회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여성은 접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가 좁다. 그녀는 또한 욕망을 절제당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주체성을 실현할 수 없다. 가사 후 그녀는 아무것도 제공받지 못한채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 자신의 내면 안으로 파고들거나 쾌락에 빠지거나ㅡ관능적이라고 표현되는ㅡ 정신병적인 증세들을 가지게 된다.  이는 어린이가 욕망을 절제당하고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할 때 자기자신으로 파고드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가 그것인 것이다. 여성의 소심함, 비열함, 수동성, 어리숙함 이 모든 것은 이런 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녀들은 그렇게 되도록 환경에 놓여지고 교육받고 상상하도록 주입받아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 외에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남성은 그럴 수 있으나 여성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신을 자유롭게 실현하면서 여러 경험을 하며 사유의 세계를 넓혀가고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여성은 그렇지 않다. 여성의 소심함은 또한 그들로서는 최대한 합리적인 행동인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자명하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절제되어버렸다. 그녀들은 욕망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경험을 한 적이 없다. 그녀의 경험에서 실패에 대한 신뢰도는 1인 것이다. 그녀는 소심하게 되거나 미쳐버리거나 자신을 철저히 죽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삶에 체념하게 된다.

6-2. (본인의 의견포함) 여성의 히스테릭한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가령 (당대의) 여성은 왜 그렇게 화장에 신경쓰는가, 외모에 집착하는가, 집안의 어떤 것이 더렵혀지는 것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남성들에게 있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있다. 일, 가정, 친구관계, 사상, 취미 등등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전반에 대해서 그들은 의견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접하고 있고 그들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자아를 채우고 있다. 그들의 삶에 중요한 것들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있다. 따라서 한 가지에 사소한 문제가 있더라도 그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자신의 자아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여성에 비해) 큰 중요도를 차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에게 주어진 것은 자신의 몸뿐이다. 결혼한 여성은 여기에 가정이 더해진다. 여성에게는 교육도 지식도 사상도 취미도 주어지지 않는다. 결혼 전의 여성은 자신의 개성을 구성할 수 없고 그들에게는 오로지 처녀성의 보존과 미래의 애인/남편에게 주어지기 위한 외모의 치장만이 주어진다. 만약 여성이 처음부터 남성처럼 주체성을 보존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굳이 외모치장에 신경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된다면 외모치장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고 외모에 있어서의 문제란 여러 문제 중에서 하나의 문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혼 여성에게 있어서 주어진 것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자신의 몸밖에 없으며 이들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하다. 따라서 그녀들은 (생존을 위해) 화장을 하고 매우 외적 아름다움을 위해 비효율적인 옷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그녀들은 자신의 옷에 흠집이 나는 것, 아주 미량의 얼룩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과도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데 이는 이들에게 외모는 곧 자아의 반영이기 때문에 남성의 입장에서는 매우 사소한 것이지만 여성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전부이므로 극단적인 반응마저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자아가 부서지는 것이다).

 외모치장과 화장과 관련된 여성들의 심리 중에 매우 흥미로운 것이 있다. 여성들은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그들의 자아 전부를 차지하고 삶의 모든 가중치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그 치장들은 결국 자신이 아니라 타인/남성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자아와 자존감을 남성에게 의존하게 한다. 여성은 판단할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자아를 남성에게 의존하게 되고 자아를 자신이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했더라도 여성은 혹시라도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고 불안해한다. 남성이 판단의 주체이며 여성은 남성에 종속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지 않아보이는 측면마저 고민하고 자신의 치장이 조금이라도 흐러졌다고 생각할 때에는 매우 남성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행동과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책에서는 다음의 인용이 있다.

" '내 기분도, 내 태도도, 내 얼굴 표정도 모두 옷에 달렸다'고 마리바슈키르체프는 쓰고 있다. '알몸으로 산책을 하든가, 아니면 자기 육체, 자기 취미, 자기 성격에 따라 옷을 입든가 해야 한다. 나의 이런 조건이 맞지 않을 때 나는 어색하고 평범하고, 따라서 창피스럽게 느껴진다. 기분과 정신은 어떤가? 그것은 누더기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리석고 권태로워 몸둘 곳을 모른다.' "

"나는 남에게 잘 보이고 싶다. 나를 아름답다고 칭찬해주었으면 한다. 리오바가 나의 모습을 보아 주고 나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왜 남이 보아 주기를 바라는가? 리본이나 tie는 나를 즐겁게 해 준다. 나는 새 가죽띠를 매고 싶다. …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은 자신의 자아를 보여지는 것, 외모에 두고 있다. 만약 여성이 다양한 경험이 가능했고 자아를 이루는데에 외모 이외의 것이 있었다면 여성은 화장이나 옷이나 몸이 아니라 자신의 취미, 일,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또한 후자의 인용문(소피아 톨스토이)은 확실히 자신의 자아가 남성에게 의존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피아 톨스토이(레오 톨스토이의 아내)의 자아의존성은 다음에 극렬하게 나타난다.

 "나의 질투는 선천적인 병이다. 아마 그를 사랑하고 그이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직 그와 더불어 오직 그에 의해서만 나는 행복할 수 있다. 그가 나에 의해서만 꿈꾸고, 생각하고, 나 하나만을 사랑해 주었으면 싶다. … 나는 이오보치카와 떨어지고는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 그이가 없으면 나는 정말로 불안하다."

 아내의 주인은 남편이며 여성은 그에게 모든 아름다움의 판결권과 자아의 판결권이 있다. 또한 여성에게 있어 남성은 모든 것이기에 자신에게 신경써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격렬한 질투를 느끼기고 하고, 위와 같이 자아를 의존하기도 한다.

 외모와 화장, 남성에게의 의존 외에도 여성은 가구, 청소, 깨끗함에 광적으로 몰두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를 아직 갖지 않은 기혼여성에게 주어진일은 요리와 청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은 그것밖에 없으므로 그들은 그것에서 삶의 가치와 중요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소한 더러움마저 여성에게는 매우 큰 문제일 수 있다.

 "그녀는 … 냅킨이나 각사탕이나 술병을 세는 등 병적이어서, 고독한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플란넬 천을 손에 들고 이웃 사람과 시시덕거리며 유리창을 닦고 있는 식모를 감독하면서, 그녀의 입에서는 신경질적인 고함 소리, 참을성없이 마구 불러 대는 소리가 내어 나올 때도 있다(130p)"

"휴식을 위한 침대가 있다. 그러나 푸근히 쉬기 위해서는 옆의 마루 위에 눕는 게 좋다. 방석은 너무 새 것이다. 거기에 머리나 발을 대서 더럽힐까 걱정이다. 내가 양탄자를 밟을 때마다 나의 발자국을 지우기 위하여 기계와 걸레를 가진 손이 나를 따라다닌다(131p)."

 이런 남성/타인에 대한 자아의 의존, 가사에의 자아의존 등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여성에게는 신경증적인 증세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타자에 대한 자아 의존은 여성을 극도의 불안과 소모, 공허, 신경증에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남성에게 있어 사소한 문제이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인식하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남성에게는 원인없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보여질 수 있는 것이다.
 남성과의 대비에서 보자면 남성은 위와 같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가령 남성은 화장이나 의복에 있어 자유로웠다. 왜냐면 그들에게 있어 의복이나 화장이란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매우 사소한 측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뛰어놀거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의 자아는 아주 다양한 경험으로 이루어졌다. 친구, 학교, 직장, 동지, 일, 취미 등등 다양한 요소가 자아를 차지했고 굳이 외모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일이었지 그들에게는 외모나 치장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전부였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외모평가는 남성에게 가해지는 그것과는 다르다. 여성에게 있어 외모평가란 곧 자아의 판결이며 심판에 가깝다. 남성에게 외모는 단순히 자신이 가진 여러 성질 중에서 하나이므로 그에 대한 평가는 그에게 큰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여성이 사회참여를 하면서 현대사회에서도 이는 비슷한 양상으로 간다. 남성에게는 능력이 우선시 되지만 여성에게는 과거 전통과 능력이 모두 요구되기 때문이다. 화장, 외모, 외모치장 등은 여성에게 있어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고 그들의 자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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