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진척 혹은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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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 사유를 해야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었고, 내 결론은 굳이 사유를 하겠다면 '의식을 장악하는 것들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의식을 장악하는 것이란 크게 감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고, 이성(理性)의 영향도 꽤 있는 편이다.

현재 내 의식을 장악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것들은 대개 '인간관계', '사랑', '학업', '인식', '철학', '신', '불확실성' 등이다. 이 중에서 학업, 인식, 철학은 여러 자료를 찾고 생각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많이 진척되는 것들이고, 그나마 내 의식의 영역에서 쉬운 것들이다.

다음은 인간관계, 사랑. 이 부분은 ...머리로 살아가는ㅡ어떻게 보면 사변적인ㅡ 나에게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인간관계와 사랑의 영역은 실천영역의 문제라 더욱 그렇다. 나는 이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유의 진척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는다ㅡ감정적인 벽이 존재하는 것 같다ㅡ.

다음은 신. 이 글의 주제다. 철학적으로 동치의 표현으로는 신, 존재(Being), 절대자, creator, designer, 절대자 등등. 내 사유 중에서 아마도 가장 불확실한 것 중에 하나이며, 동시에 흥미로운 소재 중에 하나가 신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말 진척되기 어려우며, 이것을 단순하게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알게 된다.

신에 대한 사유는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동양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ㅡ이는 필시 집에 있는 동양철학 서적을 읽었음에서 나오리라ㅡ 애니미즘적 생각을 가지기도 했고, 범신론적 세계관을 가지기도 했었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에게 '모든 것은 신이 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했었던 것도 기억한다(물론 나는 미친놈 취급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스스로의 사유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럴만도 한 게, 한국의 교육제도는 시간을 내어 사유하는 것을 도무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변한 게 있다면, 내가 특정 친구를 통해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는 것ㅡ고등학교 때도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고, 특정 속성의 신을 전제하는 기독교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ㅡ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고3때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뒤로 대학교 입학 전까지는 사유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어떻게 되어서 다시 기독교에 머물게 되었는데, 대학생이라 그런지 생각할 시간은 그나마 남아서 사유는 조금 진척되었다. 여기부터 지금까지가 나의 신관(神觀)이다.

철학을 접하고 기독교에 머물면서 나는 이 둘을 연관지어서 생각하려는 시도를 항상 해왔다. 여러 사람들이 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나는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현재의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이 질문이 얼마나 무가치하며, 무가치한만큼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글을 써내려가는 현재의 나는 인간이 결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신존재에 관한 질문은 무의미하며, 또한 무가치하다. 하지만 그 만큼 이 질문은 가치가 있다. 이 질문이 통용될 수 없는 만큼, 나는 질문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신의 존재성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예수, 베이컨, 루소, 맑스, 칸트, 니체, 슬라보예 지젝, 리처드 도킨스 등.

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들의 생각의 흐름을 읽고 비판하고 종합하며 나름대로 나의 사유를 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칸트에 따르면, 신존재는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결코 죽었다 깨어나도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칸트의 말에 따르면, 이는 '이율배반'의 문제다. 명제 p를 가정해도 세계를 설명하는데 무리가 없고, ~p를 가정해도 무리가 없는 것들이 이율배반의 영역에 속한다. 형식논리적으로 ~p와 p는 양립할 수 없다. 논리적인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 세계가 p 혹은 ~p로 설립된 가능세계임을 가정하는 것이 모두 모순이 없고, 따라서 p and ~p라면 어떻게 되는가. 무모순이 모순을 필연적으로 담고 있다. 이율배반적이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 밖의 영역에 대해서 이성으로써 결정지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이성적이지 않음을 보였다.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말하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이다.

신존재여부가 인간이성의 영역이 아니라면, 우리가 신에 대해서 사유할 때ㅡ아니, 이는 비트겐슈타인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나, 편의를 위해서 사용한다ㅡ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칸트는 그의 규범론적 윤리관을 통해ㅡ어느 면에서 실용주의적인ㅡ 신이 존재하기를 요청했다.

최근의 나의 사유는 칸트를 닮아 있다. 칸트는 존재론적 신증명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논리적 수단만으로 신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나도 많이 생각해봤다. 나는 사유함을 통해서 신이 존재함을 증명/반증해낼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율배반의 문제에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가지론자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신관(神觀)에 대해서 전혀 결정한 바가 없다ㅡ물론 단순한 추측으로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결정한 바는 없다ㅡ. 여러 신존재증명에 대한 사유들을 접하고, 그에 대한 반박들을 보고 그들을 사유하면서 나는 과연 머리를 굴려서 신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ㅡ사유한다는 건 사변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ㅡ. 현재 내 결론은 불가지론도,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니다. 나는 전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것이 현재 신의 존재성에 대한 현재 나의 생각이다.

결국 나에게 남았던 것은 하이데거의 답변이었다. "인간은 피안 너머의 존재(신)를 알 수 없다. 단지 명확한 것은, 인간은 존재 그 자체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유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신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에 대해서 결코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똑같다. 미토스 세계부터 현재까지 그 정도는 달랐으나 사유는 계속 되어왔다.

나는 이를 전제해보고 다른 영역으로 넘어와 봤다. 신의 존재성에 대해서 인간이 결정할 수 없음을 전제하고, 신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루소의 정치철학적 관점과, 칸트의 신존재에 대한 요청으로의 관점. 온전한 인간상과 사회운동적인 관점.

이는 신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실용주의적 관점을 택하고 있는 경우다. 이 경우 신존재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가능세계보다 신이 존재하는 가능세계를 '받아들일 뿐'이다.

또한 이는 사유의 영역이기보다는 실천영역의 문제다ㅡ역설적이게도 메타적으로 사유와 실천이 모두 사유가 된다ㅡ.

이런 관점을 택한다면 나는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제공하는 셈이다.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개독' 더 나아가 '안티기독', 혹은 '무신론자와 이성적인 사유가들'ㅡ안타깝게도 유신론자 일반이 이성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ㅡ같은 식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관점을 취한다.

나는 기독교의 교리를 생각하고, 그 교리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신존재에 대한 실용주의적 문제를 택하려는 생각이 있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수많은 시간의 연장 속에서 과연 기독교의 진리가 이 세상을 변혁/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다. 눈에 보일듯 말듯 하는 기독교적 구원 속에서 나는 어느 정도 희망을 보기도 한다ㅡ물론 이는 정말 미약한 수준인 듯하다ㅡ.

물론, 많은 대형교회들과 형식화되어버린 많은 것들에서 희망이 꺾이는 것을 보기도 한다ㅡ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비기독교인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ㅡ. 그럼에도,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모습에는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신에 대한 사유를 멈추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멈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알고 있다.

"멈추어 질 수 없다면 나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사유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적인 영역으로 문제를 치환하는 것. 그리고 요청에 관한 문제. 가능세계에 대한 선택의 문제.

신존재에 관한 나의 사유는 대략 이 정도 선에 있다. 나는 신을 논리적으로 증명/반증한다는 것에 대해서 불가능하다고 현재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하지 말아야 한다ㅡ이율배반의 문제ㅡ. 그럼에도 철학자들은 해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질문을 철학사 2500년 동안 계속해왔다. 나 역시 이에 대한 치명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고, 내가 신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음에도 이는 꾸준히 내 안에서 올라오는 질문이다.

내가 신이 존재하는 가능세계를 선택 혹은 비선택하려고 할 때마다, 위의 질문은 항상 나에게 다가온다.

칸트의 요청론적 신존재를 사유할 때도 "그래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정치철학적으로 신존재가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위한 기반이라는 것을 접할 때에도 "그래도 신이 없으면 이런 것은 모두 무의미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다.

최근 나의 접근방식인 실천영역의 신존재결정문제도 그렇다. 신, 더 나아가 특정 신이 세계와 인간, 집단, 나를 이롭게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신이 존재하는 가능세계를 전제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식의 생각을 할 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신이 없으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철학사 2500년을 지배해 온 이 무의미한 질문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나는 신에 대한 사유가 너무나 어렵고, 이에 관한 모든 것은 정해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 그래서 나의 의식을 장악하는 마지막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

나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동아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람들이 정말 신기하다고 느낀다.

나는 신존재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고, 이는 진척이 되기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신을 믿고 있다. 난 이게 너무나 신기하고, 어렵다.

인간이 신을 믿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는 살아가면서 계속 느끼고 있다. 이들이 어떻게 신을 믿고 있는가가 나에겐 너무나 어렵다. 잘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나에게는 어떤 면에서 이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

애니어그램 6번이기도 하고, 스스로 가끔 회의주의자ㅡ나는 심각하게 회의를 거듭했던 때가 기억에 크게 두 번정도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자살을 생각했었다. 극단적 회의주의는 철학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데카르트를 넘어설 수 있는(?) 심각한 정도의 회의는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요즘은 자제하는 편이다ㅡ를 자처했던 나에게 역시 신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나는 이 문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비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외에도 큰 문제가 있다. 어떤 가능세계가 더 낫다고 하여도, 내가 어떠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기독교적 언어로, 신이 있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나의 언어로 표현하면 '선택'의 문제. 이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면 난 정말 난감하다. 어떤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옳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이는 유난히 내가 신존재를 사유할 때 회의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 정도에 이르면,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나"라는 생각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나는 이런 사람이니 그러지 말라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나는 나만의 길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련다.

...

쓰고보니 별 내용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논하다보면 길이가 심각하게 되기에 간략하게만 적어봤다.

..

 

동아리 형과 대화하다가 문득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간략하게 나의 신관(神觀)에 대해서 정리해봤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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