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주위에서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철학분야든 예술분야든 광고분야든 말이다. 이번 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모더니즘(modernism)에 post(다음)을 더한 것이니 통시적으로는 모더니즘이 선행한다. 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유럽의 중세절대왕정에서부터 계몽주의까지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근대(modern)를 정의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계몽주의'다. 계몽주의는 중세의 무지함과 여러 가지 관습들에 항거하여 나타난 사조인데, 글자 그대로 'enlightenment' 즉 상대방을 밝게 하는 것(lighten)과 관련있다. 즉, 무지몽매를 밝게 비추어서 상대방을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는다.

 

 중세가 거의 끝나갈 즈음, 거의 최후의 발악으로 절대왕정이 등장한다. 절대왕정 루이 14세는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을 했는데 곧 만인에 대한 일인지배인 '전제정'을 암시한다. 전제정 안에서는 당연하게도 개인의 의사나 표현, 자유가 심하게 억압된다. 게다가 중세말기에는 중세초기부터 쌓여왔던 여러가지 모순들이 증폭되었던 시기이기에 강력한 전제정에 더하여 사람들은 억압되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 '계몽주의'다.

 

 계몽주의란 모더니즘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이성(理性)적 동물로 보고,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을 깨우쳐주면 사회는 저절로 변혁될 것이란 사상을 담고 있다(인간의 이성개발에 따라 역사는 발전해나간다는 사관과 동일). 즉, 중세 동안 사회가 그렇게 썩어버린 건 바로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걸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계몽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교육의 대상이며, 교육에 '사회변혁'이라는 기능이 있다는 걸 전제한다. 이런 계몽주의는 크게 2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먼저 초기 계몽주의와 후기 계몽주의를 분리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계몽주의를 떠올릴 때 '일반 대중들을 깨우친다'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초기 계몽주의는 철저히 왕과 귀족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것은 조선시대 왕도정치(王道政治)와 완전히 겹치는 양상을 보인다. 즉, 계급적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무지에서 벗어나면 사회는 저절로 발전할 것이다는 걸 전제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식의 계몽주의는 실패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문제는 당면한 자신들이 해결해야한다'는 말을 했었다. 현재 처해 있는 운명이 다른 사람이 본질적으로 다른 운명(혹은 계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데,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왕과 귀족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그들은 중세일반백성들을 이해할 수 없다. 살아가는 삶 자체가 다르고,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이데올로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초기 계몽주의는 실패하게 된다.

 

후기 계몽주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몽주의와 같다. 대중 일반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그들을 통해 사회변혁을 일으키려는 사상, 바로 그게 후기 계몽주의다.

 

이런 계몽주의 시대에 나타난 사상가들이 바로, 볼테르 루소 칸트 헤겔 존 로크 홉스 등등의 인물이다.

 

계몽주의의 사상을 연속적으로 이어받은 것이 바로 모더니즘(modernism)이다. 예술 쪽으로는 모르겠으나, 철학사상적으로는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은 같은 선상에 있다. 모더니즘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즉 이차대전 전까지 유행했던 사조다. 물론, 현재까지도 철학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보다는 주류사조로 여겨진다.

 계몽주의와 마찬가지로 이성(理性)을 최고로 여기고, 시각적인 것을 강조한다. '이성'을 최고로 여긴다는 것은, 이성과 관련된 '인식'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능력의 70~80%는 오로지 시각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이성을 최고로 여긴다는 것에는 당연하게도 시각을 중요시한다는 것이 숨어있다고 보면 된다.

 

계몽주의와 연속선상에 있는 모더니즘은 2차 대전 이후에 흔들리게 된다. 인간의 이성을 극도로 발달시켜놓았더니(계몽주의~모더니즘 시대의 급격한 학문과 과학기술의 발달), 이 이성을 인간을 잘 죽이는데 이용한 것이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어떻게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인간을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 하에 원자폭탄과 생화학무기를 만들었다. 또 잘난 이성의 명목하에, 과학과 의료기술을 발전시킨다는 명목하에, 인간을 대상으로 수많은 실험을 했다. 마루타 실험을 한 731부대, 나치정권의 생체실험 등.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련의 이러한 사태들이 바로 '인간의 이성을 최고로 삼음'에서 나왔다고 사람들은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성에 반하는 사상들이 대거 나오게 된다. 대표적으로 실존주의와 허무주의가 있겠다. 이런 일련의 이성에 대한 부정 속에 나타난 큰 사조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다.

 

 인간이 이성을 부정하게 되면 어떤 것을 강조할 수 있을까?

 

 이성과 대립되는 것을 강조하면 된다. 이성과 반대되는 것으로는 감성(感性)이나 감정(感情)이 있을 것이다. 좀더 포괄적인 차원에서 감성을 이성에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바로 이성보다 감성을 중요시하는 사조를 이른다(이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성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감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성을 아에 없애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 더 나아가 시각을 중심으로하는 모든 사조에 반대한다. 이성의 기능 중에 합리성 통합성 조화성 이런 기능들이 있을 것 같은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것들을 부정한다. 또한 기존의 이성중심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권위들을 부정한다. 그리하여 감성적인 모든 것들을 강조하고, 시각보다는 청각 더 나아가 통합적인 감각을 중요시한다. 이성이 만들어 놓은 권위를 거부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기존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다. 즉, 평범한 일반인이 예술작품을 만들어도 그 작품을 인정하겠다는 식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광고에서 잘 드러난다. 언제부턴가 광고에서 '우리 제품은 이러이러한 기능이 있고 어떤 점에서 합리적입니다' 이런 문구보다는, 그저 시청각적으로 제품과 별 관련이 없는 것들을 나열하게 되었다. 이 역시 이성의 기능인 합리성에 반대하여, 감성적인 인식을 강조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된다.

 

철학 사조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성을 인간의 주(主)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주(主)로 삼는 사상으로 여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이런 양상을 보이며, 대표적으로 '성의 역사'를 쓴 미셸 푸코가 있겠다(물론 자기자신은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불리는 걸 거부했지만).

 

 

역사적-철학적 사조(예술을 약간 곁들여)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했다. 하지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되는 용어들은 아니다. 나는 대부분 '철학'사조에서 용어들을 설명했다. 어느 분야를 가든지 이런 역사와 철학사조에 나타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동일하게 있지만, 세세한 것들에서는 조금씩 다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사회에서 계속 진행중이기 때문에 완전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 다만 대충 이러이러한 것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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