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그림이론 :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이론은 <<논리철학논고(tractatus logico philosophicus)>>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생전에 단 두 권의 책만 출간하였습니다. <<논리철학논고>>와 <<어린이를 위한 사전>>만을 출간하였습니다. 나머지 <<철학적 탐구>>같은 책들은 모두 유고작입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나머지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전기 사상은 <<논리철학논고>>(줄여서 <<논고>> 혹은 <<tractatus>>라고 부릅니다)로 대표되고, 후기 사상은 <<철학적탐구>>(줄여서 <<탐구>>라고 부릅니다)로 대표됩니다.

 

단 두 권의 책이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죠.

 

이제부터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 <<논고>>에 나타난 언어그림이론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언어그림이론 : 자동차 사고와 모형

 

 

<<논고>>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신문 기사에서 언어그림이론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기사는 법정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 상황을 여러 가지 모형을 통해 설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사건 당시에 있었던 자동차와 주변 상황을 모형으로 만든 것입니다. 요즘의 언어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하죠?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이 세계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즉, 자동차 사고가 난 사건(혹은 세계)을 사건 자체가 아닌 다른 것(모형)으로 설명한 것이죠. 비트겐슈타인은 모형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대표하고, 사건에 대응되고, 사건을 나타내고, 사건에 대해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영감을 가지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는 언어그림이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모형이 실제 상황을 나타내고 대표하듯이, 언어 또한 세계를 나타내고 대표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언어그림이론 : 모사설(copy theory)

 

 

언어그림이론의 핵심 태제는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입니다. 이것은 철학에서 그렇게 신선한 주장은 아닌데요, 그것은 이미 인식론적으로 모사설(copy theory)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사설이란 "우리의 지식은 예지계(이데아, 참된 세계, 초월계 등)의 것을 습득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고, 진리란 예지계에 존재하는 모습과 우리의 지식/언어가 일치할 때 발생한다. 즉, 지식/인식은 예지계의 것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플라톤 이래로 나타나 있는 전통적인 인식론적인 입장이죠.

 

비트겐슈타인도 언어그림이론을 모사설을 기반으로 전개해갑니다.

 

세계가 있는데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그리고, 언어를 통해 세계를 그린 것이 옳으면 지식/진리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지식이다는 겁니다. 모사설과 거의 똑같죠?

 

이를 좀더 알아보기 위해 구체적으로 논해봅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이름 :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원초적인 기호

요소명제 : 이름들의 결합이며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단순명제

(복합)명제 : 요소명제들이 결합된 명제. 다시 말해서 계속해서 분석될 수 있는 명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요소명제들의 총체'라고 정의합니다. '이름들의 총체'가 아닌 요소명제들의 총체요. 이는 프레게와 러셀으로부터 교육받으면서 받은 영향입니다.

 

프레게와 러셀은 의미의 기본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단어들의 결합' 즉, 문장이라고 보았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단어들의 결합인 '문장'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단어들의 나열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단어들의 결합으로 말을 하죠.

 

가령 '10시 수업 메가박스 점심'라는 단어만으로 우리는 어떠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프레게와 러셀은 단어들의 단순한 나열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저 단어들의 나열이 "10시에 수업있으니 메가박스는 못가고 점심이나 같이 먹자"를 의미하는지, "10시에 수업끝나고 메가박스 갔다가 점심먹자"인지 "10시에 수업없으니 메가박스는 좋은데 점심은 안 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언어활동을 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면서 가장 기초로 하는 건 단순한 단어나 단어들의 나열이 아니라 문장입니다. 또한 명제입니다.

 

프레게와 러셀의 이런 생각으로부터 비트겐슈타인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이름들이 아닌] 요소명제들의 총체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요소명제들은 서로 관여하지 않고 독립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각각의 요소명제의 진리치는 다른 요소명제의 진리치에 독립적이고 아무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논리학 카테고리에 진리표를 참조하시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언어가 세계에 대한 그림, 즉 언어는 세계에 1-1로 대응한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다음과 같이 쪼갭니다.

 

 

대상 : 이름의 지시체

원자사실(atomic fact) : 대상들의 결합이며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가장 단순한 결합

(복합)사실 : 원자사실들의 결합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원자사실들의 총체다"고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 봅시다.

 

지금 사과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사과의 인상은 빨갛습니다. 사과에는 빨갛다는 속성이 내재되어 있고, 또한 계속 분석해서 사과는 빨갛다는 어떠한 것으로 분석되고,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사과의 어떤 구성요소들의 결합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결합이 바로 원자사실입니다. 그 원자사실을 이루는 것은 대상이죠. 그리고 그렇게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결합들이 모이고 모여서 사과 혹은 사과는 빨갛다라는 하나의 (복합)사실을 만들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식으로 세계는 단순한 대상이나 대상들의 나열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상들의 결합 즉, 원자사실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상들이 결합되지 않고 그냥 나열만 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의미에 가깝다고 보는 것입니다. 세계에 있는 의미로운 어떠한 것이든 대상들의 결합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원자사실들은 다른 원자사실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독립적이라고 합니다.

 

 

제가 서술하면서 언어와 세계에 대한 정의와 설명을 거의 비슷한 구조로 했는데 눈치채셨나요? 살펴보시면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 정의하는 방식이 같은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다"

 

이 말에는 언어는 세계와 1-1대응하는 어떠한 수단이기 때문에 언어가 세계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세계가 아닌 것(언어)으로 표현하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언어와 세계가 1-1대응관계에 있고, 언어가 세계와 '논리적 구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언어와 세계가 같은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긴 할까요?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긴 할까요?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정작 그 말이 세계에 대해서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언어가 세계와 논리적 구조가 같지 않다면 의사소통이나 언어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언어가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세계와 언어의 논리적 구조가 동일해야 합니다. 논리적 구조가 같지 않다면 우리는 세계를 파악할 수 조차 없고 따라서 표현할 수 조차 없을 테니까요.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생각하에 언어와 세계에 대한 1-1대응 관계를 보여줍니다.

 

 

 세계 

  일대일대응

 언어

 대상

 대상-이름

 이름

 원자사실

 원자사실-요소명제

 요소명제

 (복합)사실

 (복합)사실-(복합)명제

 (복합)명제

 

 

표에 나타난 것처럼 각각이 대응됩니다.

 

따라서 위에서 말했던 "언어는 요소명제의 총체"라는 말과 "세계는 원자사실의 총체"라는 말은 사실 서로 대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각각의 이름들은 서로 독립적이고 영향을 주지 않고, 각각 하나씩만 단 하나의 대상에 대응됩니다. 원자사실과 요소명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요소명제끼리는 서로 독립적이고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각각 하나의 원자사실에만 대응됩니다(함수에서 일대일 대응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이렇게 각각이 대응가능한 것은 언어와 세계가 같은 논리적 구조(logical form)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세계는 서로 같은 논리적 구조를 지니고, 따라서 세계의 구성요소들과 언어의 구성요소들은 대응될 수 있고, 그러므로 우리가 언어를 가지고 세계에 대해서 표현을 해도 우리는 그것이 세계에 대해서 어떠한 것을 말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언어로 무엇이 표현된 이상 그것은 세계에 대해서 어떠한 것을 말하고 있을 테니까요.

 

즉, 우리는 세계에 대해서 아무 말이나 해도 그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는 빨갛다"는 명제는 세계에 관한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 명제의 진리치는 참이기도 하구요. 다른 예를 봅시다.

 

"돼지는 눈이 세 개다." 이 명제는 틀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명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언어와 세계가 논리적 구조를 공유하고 있고, 따라서 이 명제가 참일 때 그것이 세계에 대해서 어떠한 모습을 말하는 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그림이론이 모사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대략 이 정도의 논의로 충분합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언어는 이름-요소명제-(복합)명제로 분석될 수 있다.

2. 세계는 대상-원자사실-(복합)사실로 분석될 수 있다.

3. 언어는 요소명제의 총체다.

4. 세계는 원자사실의 총체다.

5. 이름은 대상에, 요소명제는 원자사실에, (복합)명제는 (복합)사실에 일대응된다.

6. 언어와 세계는 서로 같은 논리적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언어그림이론에 나타나는 진리함수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Posted by 괴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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