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게의 논리주의적 기획(9)ㅡ프레게의 종말과 러셀의 역설
프레게는 자연수를 정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프레게 논리가 상당히 일관적인 논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프레게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구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프레게 논리는 크게 2가지 결함이 있었습니다.
비서술적(impredicative) 정의
앞에서 다루었던 프레게의 자연수 정의를 다시 가져와 봅시다.
k is a natural number if and only if ∀F[F0 ∧ ∀x∀y((Fx ∧ Sxy) → Fy) → Fk]
이 식에는 결함이 하나 있습니다. 먼저 대상(object)에 대한 양화가 아니라 개념(Function)에 대한 양화가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후대의 쿠르트 괴델에 따르자면, 프레게같이 개념에 대한 양화를 시전하는 이차논리(Second Order Logic)는 완전하게 형식체계화할 수가 없기 때문에, 프레게의 저 정의는 일차논리(First Order Logic = 대상에 대한 양화)에 비해 덜 강력하고 불완전한 정의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개념에 대한 보편양화사를 사용했다는게 문제 입니다. ∀F를 이용해서 자연수를 정의한다면, 정의되는 '자연수 개념'자체도 정의되기 전에 이미 ∀F에 속해버리게 됩니다. 즉, 정의해야 할 대상(자연수)이 정의에 포함되어버린다는 문제가 생깁니다(보통 대상에 대한 정의는 그 대상을 제외하고 정의합니다). 러셀은 이런 프레게의 체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체에 관한 양화에 의해 정의된 것은 그 전체에 포함될 수 없다" 이를 vicious circle principle이라고 말합니다. 악순환정리라는 것이죠. 프레게의 자연수 정의가 바로 악순환고리에 걸립니다.
자연수를 정의해야 하는데, 이미 정의용어 자체 ∀F에 자연수 개념이 포함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를 비서술적 정의(impredicative definition)라고 합니다.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
프레게의 논리주의적 기획은 결정적으로 러셀의 역설에 의해서 실패하게 됩니다.
어느날 프레게는 러셀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자신의 체계에 모순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프레게의 axiom V(five)는 '어떤 개념이든지 그를 만족하는 외연이 존재한다'는 내용입니다. 전에 잠시 다루었었죠.
프레게의 결정적인 논리적 문제는 바로 axiom V에서 나옵니다.
어떤 개념이든지 그에 대한 외연이 존재한다면 이런 집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x ㅣ x∉x }
프레게 체계에서는 이렇게 집합을 만드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개념 F를 '자기자신에 속하지 않는 집합'으로 정의한다면, 그에 대한 외연은 프레게 체계 내에서는 필연적으로 보증되는 것이니까요.
이 집합 R에 대해서 두가지 경우의 수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i) R∈R
ii) R∉R
i) R∈R의 경우.
R∈R이면, R이 만족하는 개념 'x∉x'를 만족해야 합니다. 즉, R∈R이기 위해서 R은 R집합의 조건인 x∉x를 만족해야 하고 이는 R∉R의 결과를 불러옵니다.
ii) R∉R
R∉R이라면, R은 R의 집합조건인 x∉x를 만족하게 됩니다. 즉, R은 R의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에 R∈R이 성립합니다.
i) ii)경우 모두에서 R∈R ↔ R∉R의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형식논리학에서 완전한 모순이죠.
프레게의 axiom V는 이런 러셀의 역설에 의해서 모순을 낳게 되고, 이는 곧 프레게 체계 내의 모순을 의미합니다.
프레게가 정의하는 모든 수들은 #F={X : F≈X}로 정의되었습니다. 즉, 프레게 체계 내에서 모든 수는 '외연(extension)(혹은 집합)'으로 정의되었습니다.
러셀의 역설은 #F={X : F≈X}가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개념에 대해서 외연(집합)을 만들 수 있다면 R={x ㅣ x∉x }같이 논리적 모순을 낳는 집합(외연)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기 때문에 프레게의 수 정의는 러셀의 역설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후에 다룰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 만약 '모든 개념'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이 모든 개념은 x∉x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게 되서 역시 논리적 모순을 낳게 됩니다. 프레게 체계는 이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레게가 사용하는 수 자체가 외연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외연을 사용하는 프레게의 체계 자체는 모순을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죠.
프레게의 논리주의적 기획의 종말
결국, 프레게의 두가지 과제
자연수는 논리기호와 논리법칙으로 환원가능하다
수학의 모든 법칙은 논리기호로 환원가능하다
는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 과제는 고사하고, 첫 번째 과제에서 이미 러셀에게 아주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프레게의 창대했던 계획인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는 것(logicism)'은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프레게가 사용했던 여러 가지 기호들과 방법론들은 러셀과 현대 집합론을 건설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며, 크게 기여를 하게 됩니다.
...
드디어 프레게와 관련한 모든 논의가 끝났습니다. 이틀동안 거의 쉬지도 않고 글만 쓰다보니 겨우 완성되었네요;;
다음 포스트부터는 칸토어의 소박한 집합론(naive set theory)과 러셀의 대안을 살펴 볼 것 같네요.
그 내용이 끝나면 ZF집합론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프레게를 모두 정리하느라 전공책도 찾아보고, 강의록도 다시 읽어보고 위키백과도 찾아보고 구글링(?)도 해보고 여러 가지로 다시 찾아보느라 힘들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철학 포스트 중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있는데, 아마도 이 글을 완성시킨 다음에 좀 쉬었다가 다시 수학을 포스트할 것 같습니다.
프레게나 러셀에 관련해서 질문이나 비판이 있으시다면 고맙게 받겠습니다.